뛰는데,

쓰는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어제는 대설주의보였는데, 오늘 도로는 매끈했다. 여러 사람들의 수고 덕분이다.

눈을 핑계로 뛰고 싶지 않았는데, 수고를 생각하며 일단 나섰다.


뛰어 본 적 없던 시절에 생각키로는, 달리기는 지루한 운동이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헬스장 트레드밀을 15분 채우는 것도 벅찬 걸로 미루어 보아, 지루할 것은 자명했다.

'해본 적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은 없다'에 동의하는 바는 있으나

실제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

그렇게 20개월가량 뛰는 중이다. 매일이 새롭다.

개다가 대회 참가 경험이 없으므로, 내 노력을 증명해 줄 것은 오로지 스마트워치 하나뿐인데,

거기에 쌓이는 기록 만으로도 이렇게나 만족스럽다니.


다만, 한 가지 스스로에게 아쉬운 점은 아직도 출발과 동시에,

내가 오늘 완주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를 자문하는 버릇이다.

이제는 안 할 법도 한데.

여태까지 목표한 거리를 뛰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시작부터 자기 의심을 품는 것은 확실히 기운 빠지는 일이다.

내가 오늘 하루 일과 시작을 확신 없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오래가진 않는다.

뛰다가 만나는 고라니, 눈 위의 까치 발자국, 어두운 호수에서 들려오는 오리 첨벙거림, 다른 이들의 운동화 발자국 소리, 자전거 타는 어르신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락발라드, 내 숨소리, 발소리의 박자 모두가 오롯이 내 것임을 체감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어폰 없이 달리는 것이 훨씬 재밌나 보다.

그리고 완주 끝에 만나는, 약속된 성취감.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약속.

거보라고, 역시 난 할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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