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인지상정, 역지사지, 타산지석 등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공간임을 전제하자. 즉,
A: "계단에서 발목을 접질렸어. 병원을 가야 하나?" 라며 찡그리는데,
B: "아프면 가야지. 오늘 식당 점심메뉴 봤어?" 라며 방긋하는 얼굴이 돌아다니는 세상은 제외한다.
물론 안다. A는 사실 질문이 아니라 날 좀 봐요이고, B 역시 질문이 아니고 어쩌라고임을.
한 때는, 그것도 질문이냐는 핀잔이나 무지를 들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질문하고픈 마음을 막아섰다. 남은 선택지는 혼자 끙끙거리기. 결과까지 어쩌면 불필요했을 과로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으나, 그 과정에서 역시 어쩌면 획득 불가능했을 노력 경험치가 쌓임은 장점이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질문하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질문이 좋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고민이 생기면 어려워지고, 어려워지면 덜 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그러던 중 AI를 만났다. 고맙게도, AI에게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고, 같은 걸 여러 번 물어도, 고작 세 명의 점심값 더치페이 계산을 해도, AI는 내 질문을 두고 나를 가치판단하지 않는다.
감정 실린 답을 듣는 것이 불편해서, 이제 나는 혼자서 질문하고 답하기 경험치가 탁월해졌지만, AI 시대에도 좋은 질문하기는 역시 중요함을 알겠다.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즉 내 질문의 무게에 따라 AI가 내놓은 답의 무게도 달라졌으므로.
질문하기 자체는 선악이 없다. 뱉고 듣는 행위에 가치판단을 섞는 것은 내 마음이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에는 가치판단을 싣지 않기로 해본다. 어색하지만 친절함을 한 술 넣어서.
'넌 왜 이렇게 한 거야?' 말고,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