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쉬어가는 시간
좀처럼 속도를 줄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뉴욕 어퍼웨스트에서 브로드웨이 한복판으로 시간을 맞춰 이동해야 할 때는 더 그랬다.
인파만큼이나 버거운 건 그들의 속도였고, 내 걸음은 원래도 빨랐다.
빌딩을 구경하느라,
거리의 퍼포먼스를 보느라,
길을 헤매거나 지도를 찾느라,
전화기를 보거나 사진을 찍느라
거리 곳곳에 멈춰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콜타임 여섯 시에 맞춰 팰리스 극장 뒷문에 도착하고 나면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매일 아침 행당동에서 삼성역까지,
내가 밀고 있는 건지 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던 사람이 내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내가
러시 아워라는 말이 무색한
미국 중부, 미주리주의 한 대학 마을에서
2-30대 중후반을 보내며
처음으로 나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나의 속도는
공부만 잘하면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90년대의 리듬이 아니라,
오후 네 시 반이면 회사 주차장이 텅 비는
저녁이 있는 삶에 더 잘 맞는 것이 아닐까.
더 치열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어느 정도의 엣지만으로도
살아남고 성취할 수 있는 환경이
어쩌면 나의 속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십 년쯤 살다가,
뉴욕으로 갔다.
결혼과 출산, 육아, 학업과 커리어를 숨 가쁘게 이어가다
뉴욕으로 가게 된 건 가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없는 경력 단절.
이미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 중부의 중소도시로 옮기며
미래나 커리어에 대한 꿈은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었지만,
달리던 기차에서 내려오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2012년의 나는
미국 생활 12년 만에 다시 대도시에 있었다.
중부 도시에 살다 다시 대도시 거리를 걷다 보니
내가 얼마나 ‘도시를 걷는 일’을 그리워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뉴욕에서는 거의 매일 무작정 걸었다.
매일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는
미국 중부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서의 삶도
의외로 의미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십 년쯤 내달리고 나면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것도
그 시간 덕분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 걷고,
대중교통을 타고,
사람을 구경하고,
공원에 앉아 도시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광합성하듯 몸 안으로 들이마시며
나는 결정했다.
이건 내 인생의 첫 번째 사바티컬이라고.
타임스퀘어에서 어퍼웨스트까지의 길을,
날씨가 좋은 날이면
브로드웨이를 따라 콜럼버스 서클까지 걸어
센트럴 파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까지 걸었고,
어떤 날은 센트럴 파크에서 가장 사랑하던 램블에서 일부러 길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오랜만에 땀이 흘렀다.
몸이 다시 순환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이미 내려가지 말아야 할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구나.
더 빨리, 더 멀리 가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는 것도.
조용히 걷다 보면
그동안 지나쳐왔던 질문들이 따라왔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고 싶은지,
다음 계절의 삶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그때는 상황이 만든 전환점이었다면,
이번엔 순전히 나의 의지로
다시 한번 사바티컬을 선택했다.
첫 휴식 이후로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났다.
조금 느리게,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보는 중이다.
이곳 Quiet Miles에는
그렇게 무작정 걸어보았거나 달렸던 거리들이 남겨질 것이다.
머물렀던 도시들,
다른 문화 속에서 느낀 낯설고도 편안한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며
천천히 달리며 정리한 생각들.
이 기록이
비슷한 전환점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해외 생활 중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을 경험해 본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크지 않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아무튼, 산책을 나가본다.
지금의 나는 멈춘 걸까, 방향을 바꾼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