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도시 Sassi, 남부의 마테라 (Matera)
이탈리아 남동부의 경치는
불과 며칠 전까지 머물던 투스카니의 완만한 언덕, 안개, 포도밭,
사이프러스 나무와는 완전히 달랐다.
피렌체에서 며칠을 보내고 브린디시로 내려와,
풀리아지역을 자유롭게 둘러볼 생각으로 렌터카를 빌렸다.
숙소는 노치 (Noci)에 정하고
근처 알베로벨로와 로코로톤도 같은 작은 마을들을 둘러본 후,
마테라는 당일 일정으로 길을 나섰다.
차창 밖으로는 끝도 없이 갈아엎은 돌밭이 펼쳐졌고,
모든 농지는 돌답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남부 이탈리아의 척박한 땅에서는 파면 파는 대로 돌이 나왔고,
사람들은 그 돌을 깨고 쌓아 올려 농지를 만들며 살아왔다고 한다.
돌담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흡사 제주도의 돌담길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규모와 밀도는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끝도 없는 돌담을 보다가
한 시간쯤 달리자 풍경은 다시 바뀌었다.
황무지 같은 평야 위로 이제는
끝없이 늘어선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들이 나타났다.
이탈리아에 이렇게 많은 풍력발전소가 있다는 것도,
이런 지형이 존재한다는 것도 낯설었다.
고지대에 펼쳐진 평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리 달려도 도시는 보이지 않을 듯하던 눈앞에
마테라 도시 근교의 동굴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밖, 마테라의 신시가지로 불리는 지역에 차를 세우고
섬처럼 솟아 있는 마테라 구시가지로 들어갔다.
도시 전체가 수직으로 층층이 쌓인 거대한 하나의 구조물 같았다.
마테라 여행을 준비하며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리뷰가 높아 보이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두었기에, 우리는 투어팀과 합류했다.
캐나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역사를 공부했다는 투어 가이드는 마테라 출신답게 마테라 전문가였다.
투어는 사쏘 카비오소 (Sasso Caveoso)에서 시작되었다.
동굴형 주거가 주를 이루던 곳이었고, 마테라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난했던 지역이라 했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마을의 공동체 생활 방식과,
빗물을 모아 온 동네가 일 년을 살아내던 시절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길의 볼록한 바닥이 사실은
동굴 주거지의 천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동굴을 파서 생활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의 돌이 화강암이 아니라 석회질 기반의 부드러운 퇴적암 (투파 또는 칼카레나이트) 였다고 설명하며
동굴을 변형시켜 공방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네 동굴 안도 보여주었다.
한때의 삶의 터전이 이제는 작은 기념품과 조형물들을 만들고
관광객을 위한 상품을 진열한 공방이 되어 있는 것도 관전포인트긴 했다.
일부 동굴들은 여전히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창살로 막혀 있었고,
어떤 곳은 재개발을 위한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었다.
호텔이나 카페로 변형시키려면
그에 필요한 모든 기반 시설을 현대식에 맞게 모두 업그레이드하는 조건이 있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아무나 개발권을 사지는 않는다고. 입구가 막힌 동굴 안을 들여다보면, 과거의 생활 흔적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기나 수도, 난방이나 환기 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간에서
사람과 아이들, 노인과 가축이 함께 엉켜 살았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삶이 불과 무솔리니 시기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은 더 큰 충격이었다.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강제 이주를 시켰는데도 사람들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과 커뮤니티가 그리워서,
각종 질병과 따가운 정부의 시선에도.
수도 시설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우물을 파고,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만들어 빗물을 모아
마을 전체가 나누어 쓰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가난했지만, 그들 나름의 생활의 지혜와 공동체적 해법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이드는 사쏘 카비오소를 지역에서 발길을 돌리며 이렇게 덧붙였다.
"10년 후에 오면, 아마 이런 동굴 대부분이 에어비앤비나 호텔, 카페등이 되어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어쩌면 여러분이 보는 이 모습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이후 우리는 점차 사쏘 바리사노 (Sasso Barisano) 쪽으로 이동하며,
비교적 나중에 형성된 마테라의 부유한 구역을 살펴보았다.
올드 마테라와 뉴 마테라라는 단순한 구분보다,
이 두 사쏘를 따라 걸으며 가난한 동네에서 점차 재생되고 부유해지는 도시의 발전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쏘의 거리가 엄청 멀어 보이지만,
축지법을 쓰듯 불과 10분도 안 돼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이는 동굴 위에 집이, 그 위에 또 다른 집이 지어지며
수직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 양식이 착시 현상을 일으켜서 란다.
마테라를 떠나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반대편 언덕으로 건너가 해 질 녘의 마테라의 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숙소로 운전해서 돌아오는 시간 때문에 더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역사와 삶의 흔적,
그리고 복제하기 불가능한 유일한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테라는 꼭 한 번은 직접 걸어보길 권하고 싶은 도시다.
아직 자본주의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은 그때 그대로의 시간을,
이곳에서는 여전히 느껴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