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충만해진 하루, 잘츠부르크

로컬처럼 보낸 하루의 기록

by Quiet Miles

하루,


잘츠부르크에서는 모차르트 생가를 비롯해 미라벨 궁전, 헬부른 궁전,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들, 논베르크 수도원, 레지던츠 광장까지 보고 싶은 곳이 끝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인스브루크에서는 '오스트리아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잘츠부르크 첫날의 나는 완전히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단체 관광객과 투어버스가 도시의 곳곳을 채우고 있었고, 나 역시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좀 더 천천히, 여유 있게 마을을 만나고 싶었지만 2~3일이라는 한정된 일정은 마음의 여유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래도 볼 수 있는 건 다 보자'는 욕심이 고개를 든다. 그 마음을 막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첫날은, 말 그대로 누구나 다 간다는 곳들을 빠짐없이 돌아보는 하루였다.

대신 둘째 날은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이 도시에 사는 사람처럼 움직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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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관광객 모드


로컬 카페

전날 논베르크 수도원을 다녀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잘자흐 강(Salzach River)을 따라 난 도로를 걸으며

유독 눈에 들어온 카페가 하나 있었다. 카페 바자(Café Bazar). 예전에 독일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후배가, 오스트리아에 살던 시절 가장 좋아하던 카페라고 말해준 곳이기도 해서 자연스레 기대가 생겼다.


올드타운에서 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 이 카페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로컬들의 공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말끔히 차려입고 베레모를 쓴 나이 든 사람들의 모임, 요즘은 보기 힘든 여러 신물이 걸려 있는 신문 거치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손님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서버가 마치 이미 주문을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는 풍경이었다.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남기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 평화로운 아침이 일상인 사람들로 공간은 채워져 있었다.


커피 한 잔과 크루아상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아침을 마친 뒤, 호헨잘츠부르크 성곽으로 향했다.




호헨잘츠부르크- 나에겐 카르카손네

푸니쿨라에서 내려 성벽 위로 이러진 길을 걷다 멈춰 섰을 때,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잘자흐 강을 따라 이어진 집들, 성벽 안에 정돈된 구시가지, 그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초록의 들판까지. 아이들이 어릴 적 식탁 위에 펼쳐놓고 함께 즐겨하던 보드게임 카르카손네의 판이 떠올랐다.

도시와 성, 길과 자연이 경계 없이 맞물려 있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내며 "너희가 어릴 때 하던 카르카손네, 진짜 모델이 여기 있는 것 같아"라고 적었다. 우리가 함께 상상으로 쌓아 올리던 도시가 화면 속 그림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뭔가 뭉클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잘츠부르크는 웅장하기보다 조화로웠고,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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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콘서트

점심 무렵에는 시내로 내려왔다가 그 전날 봐 두었던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열리는 오르간 콘서트 시간에 맞춰 안으로 들어갔다. 정교하고 화려한 천장 아래, 기둥마다 자리한 오르간과 중안의 메인 오르간까지 모두 일곱 대의 오르간이 성당을 채우고 있었다. 연주자는 첫 번째 기둥에서 연주를 시작해, 내려와 다른 기둥으로 옮겨 연주하기를 반복해, 그리고 마지막엔 메인 오르간 연주를 마무리로 총 5대에서 한 시간 가량의 연주를 했다. 오르간이 만들어진 시기가 달라서인지, 각가의 음역과 소리의 색깔이 분명히 달랐다. 이런 연주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했다.




미라벨 궁전 실내악

저녁에는 미라벨 궁전에서 실내악 연주를 들었다. 궁전의 어쿠스틱 때문이었을까?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에서 악기들의 소리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어우러졌다.

벽과 천장에 부딪힌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다시 온전히 돌아오는 느낌, 건물 안으로 스며들었다가 서서히 퍼져 나가는 듯한 울림. 이 홀에서 모차르트가 가족과 함께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니, 소리가 벽과 천장을 타고 돌아오는 그 감각이 단지 음향 때문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음향을 최근 어디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어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로컬은 아니지만, 로컬에 조금 가까워진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대로 "충만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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