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7년 동안 달리지 못했을까

완벽하려다 멈춰버린 시간

by Quiet Miles

남편이 자신의 커리어 목표를 그의 방식대로 하나씩 이루어 가는 동안

나는 고집스럽게 내 것을 지켜내지 못했다.


내가 커리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만 더 정확히 알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것을 이루는 일에도

조금 더 욕심을 냈을지 모른다.


원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과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함께 살 때,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에게

워크라이프 밸런스라는 말은

어딘가에서 만들어낸 마케팅 문구였다.


풀타임 엄마이면서

풀타임 직장인이어야 했고,

주변에서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히나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나에게는

커리어의 끝장판까지 갈 수 없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자존심이나 욕심으로는 포기가 안 되는데

현실에서는 도저히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아빠가 돌아가신 뒤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5분도 채 달리지 못하던 내가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고 끝내 완주했다.


그 작은 성공 하나가

나에게 가져다준 자신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뭔가를 시작하면 그걸 해내는 나를 다시 찾았던 느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내가 인정해 주면 되는 거야 라는 위로.


문제는 그 이후였다.


어쩌다 보니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6-7년 정도까지.

겪어보기 전엔 가족은 함께 해야지 라는 명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그 상황에 닥치면 다른 선택을 하게도 된다.

그 후 감당은 본인이 하는 거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강박 때문이었을까.


내 몸은

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모든 걸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

작은 실수도 하면 안 된다는 마음,


그런 것들이 쌓여 있었던 걸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무의식의 세계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다만 가끔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친인척 하나 없는 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불안 때문이었는지.


불면증에 시달렸고

이를 악물고 자다가

이빨이 깨질 것 같은 불안에 깬 적도 많다.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는 장면이 현실처럼 떠올라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참을 숨을 고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잘 지내는 사람처럼 보이는 자아와


그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내 머릿속의 컨트롤 타워는

아마도 매일 과부하 상태였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그렇다.


그것이

내가 7년간 달리기를 하지 못했던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강박과 불안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갑자기 생긴 부정맥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었다.


집을 나서려고 하면

다시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은 빈뇨가 찾아왔고,

밖에 나가더라도

혹시 화장실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30분 산책조차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 시달렸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다시 찾아와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몸이,

온통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증상들을 조금씩 잠재운 것은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인정하기.


내가 괜찮지 않았다는 사실을.

10년 전 우울함의 바닥을 치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데만

2년이 걸렸던 걸 알기 때문에, 이번엔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난무하던 증상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


다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시간이 나에게

다시 주어진 유한한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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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에 갈 수 있다는 것.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그 숲 속을 걷는 시간.


이 모든 것이

언젠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순간들 자체가
너무나,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진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