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왠지 짠한 그 도시의 결에 대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by Quiet Miles

어떤 도시에 들어서면,

그곳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감정이 있다.


나에게 전라남도 광주가 그렇듯,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왠지 짠했다.


이십 년도 더 된 나의 첫 유럽 여행에서 로마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를 탔던 적이 있다.

기차가 국경을 넘자마자 풍경이 바뀌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는 그냥 막연하게 생각했다.

아, 여기는 더 시원하고 공기가 맑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번 여행에서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면서, 그 오래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국경을 넘자 창밖 풍경의 결이 묘하게 달라 보였다.


건물의 색감, 도로의 느낌, 어딘가 다른 공기의 밀도까지.


며칠 동안 머물렀던 Vienna는 어딜 가도 단정하고 정돈된 인상이 강했다. 궁전이든 거리의 건물이든, 오래된 도시 특유의 무게감은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아주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엔나에서 일한다는 오스트리안 엔지니어 두 명과 기차 안에서 한참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 대해 떠들다가 보니 어느새 도착했을 때, 그들의 이야기 때문인지 도시가 더 다르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곳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든 담담한 느낌은 어디서 온 걸까.


그 첫 느낌은 부다캐슬(Buda Castle) 주변을 걸으며 들었다.

IMG_8381.jpeg

전쟁으로 무너진 성벽이나 건물들을 복원해 두었거나 진행형인 곳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비교적 단순하게 보수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부다페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특히 1944년부터 이어진 Siege of Budapest 동안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며칠 동안 보아 왔던 Vienna의 궁전과 건물들이 비교적 정교하게 복원되고 관리되어 있는 모습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전쟁의 흔적과 그 이후의 복원의 과정이 조금 더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수학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재들도 시멘트를 쓱쓱 발라 급하게 복원해 둔 곳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도 어딘가 흉물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한국에 가 보면 그런 곳들이 다시 정비되어 가능한 한 옛 구조와 재질이나 색감에 맞게 훨씬 정성스럽게 복원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원의 방식도 달라지고 그 사회가 역사와 문화유산을 대하는 여유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부다페스트의 옛 성들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해졌었다.


그 생각은 다뉴브 강가에서 더 깊어졌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강 쪽을 향해 놓여 있는 신발들이 보인다.


Shoes on the Danube Bank


IMG_8395.jpeg
IMG_8393.jpeg

얼핏 보면 그냥 단순한 예술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 중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추모 조형물이라고. 헝가리 파시스트 조직이 사람들을 강가에 세워 두고 총살할 때 강에 떨어지기 전에 신발을 벗게 했다는 걸 알고 보니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무게가 느껴져서 맘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또 한 곳이 있었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그 옆 지하 전시 공간에서 Hungarian Revolution of 1956 관련 전시를 보게 되었다. 1956년, 헝가리 시민들이 자유를 요구하며 일어섰던 봉기는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망명했다 한다.

IMG_8434.jpeg

거리의 총탄 자국 사진들과 그 시절을 기록한 자료들을 보며 문득 광주 민주화항쟁이 겹쳐 떠올랐다.


광주 도청과 민주화항쟁 기념관에도 다시 한번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끝나도 이어지는 끊임없는 불안의 시대.


성벽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과

다뉴브 강가에 놓은 신발들

그리고 자유를 요구했던 사람들의 기록까지.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했지만
어딘가 마음 한쪽이 찡해지는 그런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