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시대에 그림이 할 수 있는 일

게르니카 앞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by Quiet Miles

마드리드에 각자 도착한 여행 버디 우리 넷은 숙소에 가방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 도시가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었지만, 우리는 출발 전 각자 "마드리드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정해 여행의 앞뒤에 넣어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축구 경기였고, 누군가에게는 박물관, 또 다른 이에게는 유명한 타파스 맛집이었다.


내가 가져온 여행 책자에는

"마드리드에 간다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게르니카'를 꼭 보라"는 문장이 강조되어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여장을 내려놓고, 주저 없이 오후 입장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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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소피아 박물관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대한민국 과학 영재 교육 그림자를 밟아온 나는

인문학도 미술도 대부분 '외우는 과목'으로 배웠다.

미술은 화가 이름만 알고, 역사는 사건 연도만 외워

시험만 잘 치르면 되었던 기억이 전부였다.


미국에서 아이들의 학창 시절을 지켜보며,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배움 방식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내 생각도, 세계관을 쌓는 과정도 없었다.


여행을 하며 직접 보고, 느끼고, 만나는 예술과 자연, 그리고 살아 있는 역사는

주입식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던 세계였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마음으로 받아 적으면서

세계관의 조각들이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미술과 역사를 어려워했던 이유는

아마도 '배우는 방법'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르니카 앞에 서다.

게르니카는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의 충격이었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한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곧장 게르니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 멈춰 섰다.

IMG_5319.jpeg 게르니카, 레이나 소피아에서

한벽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크기.

형체가 부서진 동물과 사람들의 몸짓.

절규하듯 뒤틀린 얼굴들.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이 그 거대한 에너지를 담기엔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피카소를 그저 기하학적 화풍의 천재 정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 독재, 폭격이 드리운 시대의 공기 속에서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게르니카를 그리기 위해 수없이 그려나간 습작들을 보며

그의 분노와 슬픔의 결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카소는 게르니카의 운명에까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새겨 넣었다.


그는 게르니카를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맡기며,


"스페인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전에는
이 그림을 스페인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라고 조건을 걸었다 한다.


독재가 끝나고, 스페인이 민주화된 뒤인 1981년이 되어서야

게르니카는 마침내 고국, 그리고 마드리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게르니카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스페인의 상처와 전쟁의 비극을 알리고 있었고, 이는 피카소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다시 마주한 게르니카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혼자 바르셀로나에 머물 때,

나는 피카소를 더 알고 싶어 져서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갔다.

그의 일생의 작품들을 차근히 따라가며

그동안 피카소를 너무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의 화풍을 따라가다 보니

마치 한 사람의 생을 훑는 느낌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슬픔, 젊은 날의 기세,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고 싶은 욕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자유로움까지.

피카소는 늘 변화했고, 변화하는 자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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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암울할수록

창작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예민해지고

그들의 증폭된 감정은 작품 속에 스며들기도 한다.

그들 또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파시즘이 스페인을 뒤덮고

민주주의가 짓밟혔던 그 시절,

피카소가 느꼈을 고통과 분노와 상실은

게르니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 시절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절규가 담겨 있었고,

그 앞에 선 지금의 우리 역시

그 무게를 잠시나마 감당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어둠과 울림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절에도

여전히 감당해야 하는 무게로 깊게 공명하고 있다.


마드리에 다시 간다면,

나는 또다시 게르니카 앞에 설 것이다.

이번에는 더 오래, 더 천천히,

그곳에 머물며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도 보지 않은 척하며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