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촌스러움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어요

by quietrebel

카카오톡의 숨김 친구 목록을 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곳엔 내가 한때 마음을 뒀던, 아니 솔직히 말해 꽤나 좋아했던 그 남자의 이름이 묻혀 있었다.


몇 년 만에 업데이트된 새로운 사진과 동영상. 나는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곧이어 내 입에선 안도의 한숨인지, 비소인지 모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의 옆에서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웃고 있는 저 여자. 나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아야 할 저 여자.


"도대체 옷을 왜 저렇게 촌스럽게 입었지?"


그래, 나에게는 지독한 고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촌스러움을 참지 못하는 병’. 평소에는 잠복해 있다가 특정한 대상 앞에서만 발작적으로 도지는 병이다. 그 대상이… 내가 미치도록 질투하는 사람이라면 증세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다. 그때 나는 비로소 예민한 환자가 되어 마른기침을 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왜 누구는 취향을 입는데, 누구는 넝마를 걸치는 걸까? 그 여자의 옷차림이 내게는 시각적 폭력처럼 다가왔다.

디테일을 말하기도 싫을 만큼 그냥 '촌스럽다'를 시각화하면 그 여자의 옷차림일 것이다. 사실 남이 거적때기를 걸치든 프라다를 입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시간과 장소(TPO)만 얼추 맞으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나는 그 꼴을 견딜 수가 없다. '안 예쁜 옷'이 싫어서? 아니면 그저 그녀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촌스러움이라는 핑계를 마침 잘 만난 걸까? 솔직해지자면, "그래도 내가 너보단 낫다"는 얄팍한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완벽하게 세련된 사람이었다면, 나는 정말 영문도 모르고 비참해졌을 테니까.)

옷이란 몸뚱이를 가리는 수단이라지만, 이왕 입는 거 좀 예쁘게 입으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설마 저 두 사람의 눈에는 저게 예뻐 보이는 걸까? 끝없는 의문은 나의 질투를 희석시킨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라고 뭐 달랐던가. 한때는 누구나 그렇듯 나도 촌스러웠다. 그런 자신이 싫어서 억지로라도 그럴싸한 취향을 수집하고 나를 그것에 맞춰야만 했다. 잡지에서, 블로그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의 취향들을, 고상하고, 우아하고, 시크하고, 에지 있는 것들! 나는 그게 너무 좋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예쁜 것들도 내 처지와 몸에 맞지 않는다면 전부 다 별로인 것을.


그리고 단단하고 견고한 내 취향인 줄 알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유행은 너무도 빨리 돌고 돌았다. 그 흐름에 편승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요즘은 그런 문제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돈을 쥐어줘도 안 입을 것 같던 촌스러운 볼레로와 주머니가 붙어있는 촌스러운 카고 팬츠, 밑위가 한껏 짧아져 통허리를 강조하는 촌스러운 로우라이즈 진을 옷장에 채워 넣고 꺼내 입으며 매일 아침 거울을 본다. 촌스러운 것이 가장 시크한 것, 가장 유행하는 것이 되어있는 이 SF적인 설정이 나를 힘들게 한다. 거리에는 트렌드를 입은 사람들이 한 무더기다. 너도 나도 똑같이 입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민족.


그게 싫어 어느 날은 ‘진짜’라는 콘셉트를 잡고 원래 좋아했던 취향과 그에 걸맞은 룩으로 꾸민다. 사실 그것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게 뭔가. 도대체 ‘취향’이란 뭘까? 이것도 예쁘고 저것도 예쁘다며 휘둘리지만, 단 하나, ‘안 예쁜 것’만큼은 귀신같이 찾아내는 것, 이게 내가 그토록 울부짖었던 안목과 취향의 실체란 말인가. 패션에 통달한 척하는 사람과 진짜 안목 있는 사람의 경계선에서, 옷이라도 최대한 촌스럽지 않게 입고 싶은 자존감 낮은 여자의 발악인지도 모르겠다.


혀가 길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다. 나는 그 남자의 옆자리를 꿰찬 그녀가 촌스러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옹졸하고 아픈 환자라는 것이다.


“네, 저에게는 촌스러움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어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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