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강령
혐오와 무례, 부조리가 판치는 이 척박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내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비판 의식과, 저항 의지가 도사리고 있다. 이 ‘불온함’을 들키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다음의 행동 강령을 결의한다.
하나. 예의 바른 척, 친절한 척 완벽하게 연기할 것이다. 다정함은 곧 품격이자, 적을 방심하게 만드는 위장술이다. 언제나 무해한 미소를 띠고, 깊은 배려심을 유지하라. 순한 양의 가죽을 뒤집어써라. 하지만 그 부드러운 가죽 아래 쉴 새 없이 쌍욕을 씹어 삼키는 능숙한 위선자가 되어라. 비록 가짜일지라도, 그로 인해 지켜낸 나의 안위는 진짜일 테니.
둘. 무례한 인간들, 납득할 수 없는 사회에 절대 맞서 싸우지 않는다. 결코 저열한 그들의 더러운 피를 내 손에 묻히지 않을 것이다. 질서와 체계를 깨부순답시고 고귀한 영혼을 흠집 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정당한' 혐오를 품고, 일리 있는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입은 닫더라도 뇌는 깨어 있어야 한다. 맹목적인 분노 대신, 논리적인 근거에서 비롯된 경멸의 시선을 선사할 것이다. 끔찍한 저주를 퍼붓고, 끝없는 복수를 천천히, 철저히 설계해 보라. 오늘 밤, 당신을 괴롭힌 자들을 마음속 단두대에 세워라. 시스템의 전복이 야기할 거대한 혼란을 상상해 보라.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경계가 언젠가는 무너질 테니.
셋. 그리고 험담으로 연대한다. 우리는 확실한 ‘적’을 공유함으로써 비로소 결속한다. 따뜻한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눈동자에 새겨진 은밀한 표식을 확인하라. 그리고 우리만의 안전한 세계에서 가면을 벗고, 감춰왔던 날카로운 송곳니와 본색을 드러내라. 가슴속 깊이 눌러 담았던 독기 어린 언어로 ‘적’을 잘게 씹고, 뜯고, 완벽하게 해체하라. 난무하는 뒷담화 속에서 번뜩이는 그 서늘한 칼날은, 오직 우리의 밝은 눈에만 보일 테니.
가장 고요하고, 위험하게
불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