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1] 마지막 경고장

오직 '부'를 숭배하느라 밤낮으로 소란스러운 당신들에게

by quietrebel

2024년 2월의 어느 밤

나의 작은 방에서


친애하는 ——— 귀하,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부(富)'만을 숭배하며 밤낮으로 그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는 당신들 모두에게.




“???”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부터 올립니다.


당신들이 오늘도 침을 튀기며—실로 대단한 열정으로—당신들의 실제 삶과는 대체로 무관한 그 '부(富)'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실 때, 불행히도 제 머릿속에는 저 갈고리 모양의 거대한 물음표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태생적 결함 탓인지,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우둔하여 당신들의 말씀 속에 담긴 그 숭고한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부동산(아파트). 미국 증시. 암호화폐. 골프.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누가 무엇을 샀다더라.


마치 인간 알고리즘이라도 된 양, 당신들의 화두는 어쩜 그리 누가 짠 듯이 똑같습니까. 당신들이 내는 소음은 제 안의 봉인된 악마를 깨우는 주문처럼 고막을 타고 침투해 뇌를 오염시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을 터득하고자 애쓰고 있으나,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물론 당신들의 의도는 순수했을 것입니다—좋은 정보를 나누고자 하는 천사 같은 마음, 혹은 선민의식, 그 어디쯤.


하지만 친애해 마지않는 여러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어째서 매일 아침 당신의 주식 포트폴리오에 대한 브리핑을 강제로 청취해야 합니까? 당신 가족이 복지 포인트로 구매했다는 에어프라이어의 정확한 기종을 내가 왜 알아야 합니까?


지인의 토지 가격 변동 추이, 주말 골프 스코어, 자동차 견적, 청약 가점, 경제 전망,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최근 행보...


성공, 부, 명예. 모두 훌륭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라면 당연히 돈을 위해 사는 것이 맞습니다. 저라고 싫겠습니까.


하지만 제발, 그 이야기를 왜 회사에서 하십니까? 그 시간에 회사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업무 논의나 하시지요.

왜 가족 행사에서 하십니까? 사돈의 팔촌의 조카의 친구가 땅을 사서 그토록 배가 아프십니까?

왜 친구들과의 '좋은' 모임에서 하십니까? 대화 주제가 빈곤하여 그런 이야기로라도 공백을 메워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진정으로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하고 과묵합니다. 왜 항상 빈 수레들만 이토록 요란한 걸까요?


당신들은 귀감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성대를 울려 소리를 배설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이긴 합니다.


당신들의 대화는 소통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발정 난 수컷들이 서로 '누가 더 큰가'를 겨루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 같아 역겹습니다. 차라리 2010년대 래퍼들처럼 비트 위에 가사를 얹어 '플렉스'라도 하시던가요. 나는 당신들의 천박한 과시욕에 박수를 보내기 위해 대기 중인 갤러리가 아닙니다.


그저... 좀 조용히 해주셨으면 해요.


저도 유튜브 보고 뉴스 봅니다. 당신들의 얄팍한 지식으로 재가공된 '정보 찌꺼기' 따위,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발 제가 알아서 살게 내버려 두세요. 궁금하면 제가 먼저 묻겠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지금은 가만히 들어주니 만만해 보이겠지만, 언젠가 당신들이 기겁할 만큼 조롱해 드릴 날을 벼르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모든 소음을 웃으며 견디기엔 제가 너무 늙고 지쳤네요.


당신들처럼 '부'를 숭배하지 않는 반사회적 낙오자라고 칭해도 좋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애초에 제게 '부'란 원래부터 가져본 적 없으니, 없어도 그만인 것, 있으면야 좋겠지만... 행여나 손에 쥐게 되더라도 남들 눈에 띌세라 깊숙이 숨기고 싶은, 그런 것이니까요.


다만,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야 겨우겨우 인내심을 끌어모아 내일 또 당신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아 남기는, 부치지 못한 편지, 혹은 마지막 경고장으로 해두죠.



당신들의 영원한 청중이자, 끝내 '부'를 믿지 않을 이방인으로부터




추신

혹시 이 글을 읽고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어, 이거 내 얘긴가?" 싶어 불쾌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메타인지 능력은 아직 살아있군요!

부디 그 남은 한 줌의 지성을, 내일 당신의 입을 다무는 데 사용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