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록] 붕어싸만코의 역설

by quietrebel

오늘도 나는 붕어싸만코를 만났다.


팥이 조금 모자란, 아니 거의 없는 붕어싸만코. 와삭 씹히는 얄팍한 껍데기 안에는 텅 빈 공간만 넓게 펼쳐져 있다. 문제는 그 붕어싸만코가 스스로를 최고급 앙금 100% 화과자쯤으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제 딴에는 세상을 다 아는 듯 떠들어대면서, 정작 본인이 무엇을 알고 하는지 무엇을 모르고 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력이 30초 이하라고 해야 맞다.


그 공허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이상한 기시감이 든다. 저건 사람인가, 아니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가 지나치게 멍청하면 역설적으로 다시 불쌍해진다. 그 얄팍한 껍데기를 와삭 씹어먹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다가도, 이내 밀려드는 알량한 연민에 악어의 눈물이 앞을 가려 나는 또다시 시선을 거둔다.


나의 하루는 이 거대한 멍청함들을 견디는 인내의 시험장이다. '그래,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거니...'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억지 춘향 격의 인본주의, 휴머니티를 영혼 구석구석까지 끌어 모아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덮는다. 그 인내의 대가는 삭신이 저려오는 피로감과 혈압의 오르내림, 그리고 명치끝에 걸린 울화통뿐이다. 겨우겨우 녹여내고 식혀 한층 미니멀해진 감정의 찌꺼기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끝나는 하루 일과.


그들의 삶은 거대한, 그러나 더없이 조잡한 일종의 연극이다. 머릿속은 공명음이 울릴 정도로 텅텅 비었는데 겉만 보면 아주 꽉 찬 C컵인 척, 깊이라곤 발목도 안 잠길 고인 물웅덩이 주제에 품은 뜻은 태평양인 척 구는 꼴들이 참 가관이다. 남들 눈엔 이미 다 까발려져 훤히 들통난 패를 손에 쥐고도, 어디서 배운 건 있어서 뻔뻔하게 '뻥카'를 쳐댄다. 혼자 바람잡이를 자처하고 혼자 죽는 우스꽝스러운 원맨 포커인 줄도 모르고 훈수는 오지게도 둔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신격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스스로 씌운 '셀프 메이드' 왕관을 쓰고, 때로는 광고 천재 데이비드 오길비인 척, 때로는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인 척, 심지어는 세상을 구원할 예수 행세까지 해댄다. 플라톤이 말한 '동굴 안의 죄인들'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무지몽매한 어둠 속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인 양 믿고 사는 존재들. 문제는 이 시대의 죄인들은 감히 동굴 밖으로 기어 나와, 그 그림자가 진리인 양 맹렬히 지껄인다는 점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들의 위험천만한 공격성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잡아다 제멋대로 프레임을 씌우고, 억지로 죄인을 만들어 머그샷을 박아버린다. 타인을 재단하고 단죄하는 솜씨가 거침이 없다. 아주 남산 안기부 나셨다. 그 오만방자함 앞에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은 도로 기어들어가고, 대신 주먹이 먼저 튀어나가려 한다.


미친 게 아니라면 대체 저것들의 상태를 무엇이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참는다. 팥 없는 붕어빵도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끼니일 테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붕어싸만코를 만나고, 참고, 견디고, 감정의 쓰레기통을 비운다. 내일도 또 만날 거라는 걸 알면서. 이것이 바로 붕어싸만코의 역설이다. 너무 멍청해서, 다시 불쌍해지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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