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꿈은 불온하고 역겨운 생각들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것은 성적인 추잡함이라기보다, 누군가를 통제 불능으로 갈구하는 자의 비루한 강박에 가까웠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이불 위로 그 얼굴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을 강제로 여는 가차 없는 햇빛처럼, 그 얼굴은 나의 망막을 뚫고 들어와 강제로 의식을 깨웠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공들여 쌓아 올린 내면의 벽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동안 냉소를 갑옷 삼아 이 보잘것없는 전신을 지탱해 왔다. ‘떨림’ 같은 낯 뜨거운 것은 내게 패배의 증거였기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비웃으며 그 수치심을 견뎌냈다. 그러나 이제 그 냉소적인 나날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역겨워졌는지 모른다. 그 고결한 척하던 방어기제들을 기억조차 못 할 만큼, 나는 이 파괴적인 감정에 배가 불렀다.
냉정하게 말해, 이것은 예쁜 감정이 아니라 내 자아의 침식이다. ‘차가움’이라는 단어 아래서 명분과 실리를 따지며, 사회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내 안의 '나'는 이미 그 감정이 주는 일종의 쾌락에 절여졌다. 괴로운 기억과 좋은 기억이 족쇄와 쇠사슬이 되어 온몸을 휘감고 있는데도. 그러나 나는 결박을 풀어내려 하기보다 오히려 그 살을 파고드는 금속의 감촉을 즐기고 있다. 고통이 선명할수록 그 존재가 실존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일희일비(一喜一悲). 오늘은 ‘비(悲)’에 수렴하더라도. 텅 빈 일상보다 이 끈적이고 집요한 갈망과 그에 따른 슬픔과 고통이 조금 더 좋았다.
지금 이 시간, 이 밤조차 불온하고 역겨운 생각들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누군가를 지독하게 갈구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가장 비천한 곳으로 끌고 내려가는 행위다. 나는 이 굴욕적인 감정을 차마 미화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사슬에 묶인 채, 이 밤이 주는 역겨움을 끝까지 받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