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까지 완벽해야만 했을까

전교 9등도 실패라고 믿었던 시간

by 조용한 생존자

중1 2학기 시험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채점을 했다.


"1번에 5번, 2번에 3번, 3번에 4번,..."

"아...!"

"뭐야!"

"완전 망했어."

"야, 10번에 몇 번이래?"


반장의 입에서 답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특히 논란이 있었던 몇몇 문제들의 답이 밝혀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나는 한 문제 한 문제 채점할 때마다 너무 긴장이 돼서 시험지가 다 젖을 정도로 손에서 땀이 났다.

그렇게 채점한 결과는, 92점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이 시험 마지막날인데... 이대로라면 전교 3등 안에 못 들겠어.'


엄마의 '겨우 전교 5등이냐'라는 말 한마디는, 더 높은 등수로 올라가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그래. 시험이 어려웠을 수도 있으니까 등수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토록 궁금해했던 등수가 나왔다.

반에서는 1등, 전교에서는 9등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부르시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번에도 우리 반 1등이네, 잘했어."

하지만 전교 9등이라는 말에 실망한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짜증스럽게 "뭐, 왜?" 이렇게 반응하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전교 10등 안에 들었는데도 실망하는 나를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유별나게 생각했다. 언젠가 한번 SNS에서 '학창 시절 재수 없었던 친구들 유형' 중에 '시험에서 한 개만 틀려도 우는 친구'가 순위에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뜨끔했다.


엄마의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아무리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해도 엄마의 하소연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중2병'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만큼 사춘기가 절정에 달하는 중2 어느 날이었다. 나는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리며 엄마한테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저한테 그만 좀 얘기하세요!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런 얘기 듣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러자 돌아온 엄마의 말은 이랬다.

"넌 너만 생각하냐? 너도 너네 아빠랑 똑같아. 왜 그렇게 냉정하냐."


억울하고 허무했다. 그 뒤로는 공부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조금만 공부해도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다니던 학원을 끊고,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서에 틀어박혀 웹서핑만 했다. 엄마와 싸우고 방에서 울다가 잠드는 일도 허다했다. 그렇게 중2 2학기 시험이 다가왔다.


1학기까지만 해도 전교 5등 안에 들었던 내 성적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20등 밖으로 밀려났다. 당시 전교 학생수가 350명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교 20등 대도 충분히 잘한 성적이다. 그런데 그땐 내가 공부를 덜해서 성적이 떨어진 걸 알면서도 너무 서럽고 슬펐다. 옆에 앉아있던 짝꿍이 "괜찮아?"라고 물었지만, 내가 학교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세상이 무너진 듯 펑펑 울었다.

결국 그날 담임선생님은 나를 따로 남겨서 면담을 했다.


"잘했는데 왜 그래."

"엄마가 안 그래도 힘들어하시는데, 속상해하실 것 같아서..."

"아이구, 왜 그런 생각을 해... 너무 속상해하지 마.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결국 나는 다시 외고반이 있는 종합학원으로 복귀했다. 중3이 되자 본격적으로 외고 입시 대비에 들어갔고, 소수 정예로 선발된 총 6명이 한 반이 되어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고된 입시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10시 이후에 수업하는 게 불법이지만, 그땐 아니었다. 2시에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서 부랴부랴 씻고 누우면 새벽 3시. 그리고 등교를 위해 7시 반 기상. 이런 생활을 반년 정도 이어갔다.

강행군이 이어지면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지쳐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캔커피를 마시며 버텼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문제라도 더 풀고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애썼다. 그런 나를 두고 외고반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너 혹시 철인이야? 졸리지도 않아? 어떻게 사람이 잠도 안 자고 그렇게 공부만 해? 대단하다!"


원래 영어를 제일 잘하기도 했고 거기다 노력까지 더해져서 같이 모의고사를 보면 1등을 할 때가 많았다. '왜 이렇게 잘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 아빠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고 연락 한통 없이 생활비와 학원비를 보내줄 뿐이었다.


잠이 늘 부족하다 보니 거의 좀비처럼 내 몰골은 피폐해져 갔다. 그래도 부모님께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집념으로 깨어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만 몰입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나를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