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에 합격한 날,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나는 혼자였다

by 조용한 생존자

엄마의 하소연은 계속 됐다.


외고만 바라보며 달리고 있던 나를 붙잡고 엄마는 깊은 슬픔과 원망을 토해내셨다. 하지만 그 마음을 헤아리기엔 나도 너무 지쳐있었다. 하루에 4~5시간밖에 못 잤고,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합격에 대한 집착과 불안으로 극도로 예민해졌다. 결국 나는 폭발해 버렸다.

"듣기 싫다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 두세요!"

엄마 역시 내 마음을 헤아려줄 여유가 없으셨던 듯했다.

"넌 진짜 너네 아빠랑 똑같다. 너는 니 아빠 편이냐? 넌 어쩜 그렇게 니 생각밖에 안 하냐?"

또 똑같은 레퍼토리. 지겨웠다.

"그런 거 아니라고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뭐! 너 엄마한테 지금 뭐라고 했냐?"


엄마와 심하게 다퉜던 다음날 아침,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불속에 몸을 웅크린 채 나오지를 못했다. 무거운 추라도 매단 듯 몸이 가라앉고 무거웠다.

그러면 안 됐지만, 선생님한테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무단결석을 했다. 늦잠을 좀 잔 뒤 웹서핑을 했다. 엄마는 "학교 안 가냐?"라고 물어보시고는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또 외고는 가고 싶어서 학원에는 갔다. 그렇게 3일을 무단결석하고 4일째 되던 날, 담임선생님이 나와 엄마를 호출하셨다. 이미 학교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 학교로 가는 길에 엄마는 동네 시장에서 5000원짜리 피자 몇 판을 사셨다. 피자를 들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선생님한테 혼날 줄 알고 잔뜩 쫄아있었는데, 선생님은 뭔가 눈치챈 듯 따뜻한 말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거구나."

단지 그뿐이었다. 더 이상의 긴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피자를 선생님께 전달하고 엄마와 학교 건물을 나와 신발을 갈아 신을 때였다. 엄마는 내 헝클어진 머리와 생기 없이 초췌한 얼굴, 다 해진 삼선 슬리퍼를 보고는 "이게 뭐냐..."라며 머리를 빗어주셨다. 그때 본 엄마의 슬픈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갔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끝나고 선생님이랑 같이 배구 연습할래?"

당시 내 내신점수를 크게 깎아먹는 과목은 체육이었다. 중간고사 때는 필기 점수만 들어갔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기말고사 때는 필기 20%, 실기 80%로 실기의 비중이 훨씬 컸다.

나는 운동신경이 지독히도 없어서 아무리 연습해도 수행평가에서 번번이 D나 E를 받았다. 아무리 필기시험 두 번 다 100점을 받아도 수행평가는 넘기 힘든 큰 산이었다. 그걸 아셨던 선생님이 기꺼이 시간을 내서 연습상대가 되어주신 거였다. 선생님과 운동장에서 배구연습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어느새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시절,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 따뜻한 어른은 또 있었다. 바로 외고반 담임을 맡으셨던 학원선생님이었다. 작은 키와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단발머리에, 눈이 작아보일 만큼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시고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리시던 선생님. 짓궂은 남자애들은 선생님을 놀리듯 까불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늘 화 한 번 내지 않고 웃으며 우리에게 하트를 날리시고, 항상 나를 "예쁜 ○○"라고 부르시며 밝게 웃어주시곤 했다. 하루는 엄마랑 싸우고 학원에 갔는데, 너무 마음이 지쳤던 나머지 자습시간에 교실을 나와 무작정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

"어? ○○야, 왜?"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그날은 더 이상 혼자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동안의 가정사와 괴로움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며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우리 ○○가 그동안 힘든 상황에서도 잘 버텨왔구나..."

선생님도 우시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 뒤로 선생님은 나에게 기꺼이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셨다. 한 번씩 따뜻한 밥을 사주셨고, 학원차가 없는 주말엔 선생님 차로 집까지 바래다주셨다. 내가 흔들릴 때면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어. 얼마 남지 않은 입시 조금만 더 힘내서 끝까지 잘해보자."라며 붙잡아주시곤 했다.


고단했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지망했던 외고의 입학시험날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쌓아온 실력껏 막힘없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시험을 마치고 나올 땐, 자신감반 불안감반이었다. 그리고 발표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합격자 발표날. 시대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학원에서 결과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몸은 학원에 있었지만, 마음은 내 방 컴퓨터 앞에 가있었다. 자꾸만 시계 쪽으로 눈이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수험자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을 클릭하기 전, 너무 떨려서 심호흡을 했다.


"휴..."


'딸깍.'


합격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꺄~!"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합격. 그것도 1 지망이었던 중국어과라니!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아, 시끄러워!"

같은 방을 쓰고 있었던 여동생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곧장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저 외고 합격했어요!"

엄마는 TV에 눈을 고정한 채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아휴, 외고 돈 많이 들어..."


그 순간, 소리 지를 만큼 흥분했던 마음이 촥 가라앉았다. 아빠랑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돼 연락해 볼 마음이 안 들었다.


합격을 확인한 그날 밤, 정작 그 중요한 순간에 나를 축하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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