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웃지 않으면, 나도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외고 합격자 발표 3일 전은 빼빼로데이였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조용했던 내 자리가 시끌벅적해졌다. 중2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가 모두의 눈에 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 크고 알록달록 하트무늬가 가득한 가방에 빼빼로랑 초콜릿을 잔뜩 담아서 복도를 지나 내 자리까지 가져온 것이었다. 그 친구는 바로 내가 20등 밖으로 밀려나서 울고 있을 때 "괜찮아?"라고 물었던 짝꿍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까지 와서 구경한다고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뜻밖의 고백에 놀랐지만, 그땐 신경이 온통 외고 합격자 발표에 쏠려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당장 고백을 받아줘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고마워."
일단은 빼빼로 가방을 받았다.
"와~!!!"
"오, 받았다!!"
"사겨라~사겨라~"
주위에서 함성과 박수소리로 아주 난리가 났다.
금세 쉬는 시간이 끝난 덕분에(?) 나는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그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사귀어볼래?'
내 답은 이랬다.
'좀 더 생각해 볼게.'
가족들에게 축하받지 못한 외고 합격 발표일 다음날, 학교를 가니 아침부터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합격했어."
"오, 잘됐다! 축하해."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로부터 부러운 시선, 그리고 칭찬과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밝아졌다. 목표했던 학교에 합격하고 공부에서 해방된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나를 좋아했던 그 친구도 나를 찾아왔다.
"외고 합격했다면서? 축하해! 역시. 너는 쉬는 시간에 자거나 공부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니까, 그날 빼빼로 줄 때도 언제 줘야 할지 좀 망설여졌었어. 혹시 생각은 좀 해봤어?"
나는 그 친구가 친구로서는 착하고 좋았지만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사귀......"
"아싸!"
사귀자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 친구가 환호했다. 그때 그 친구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했던가. 그날 저녁, 학원에 가자마자 친구들이 나를 보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남친 생긴 거 진짜야?”
“너 같은 범생이가 웬 남친이야ㅋㅋㅋ”
웃으면서도, 다들 진심으로 놀란 눈치였다.
그렇게 그 친구와 주말에 만나서 당시 흥행했던 로맨틱코미디 영화도 같이 보고 밥도 먹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받아준 건, 그렇게나 간절했던 외고 합격으로도 채우지 못했던 공허함을 조금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이 보일수록 더 미안해졌다. 결국 사귀자고 한 지 일주일 만에 이별을 통보했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그 관계를 시작했다.
무슨 시험이든 합격한 이후의 명절은 자신감이 충전되는 날이다. 어느덧 겨울이 되고 고등학교 입학식 전 설날이 찾아왔다. 우리 집은 큰집이었고, 아빠는 명절이 되자 아무 일 없었던 듯 집에 들어왔다. 온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 집안이 북적북적해졌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엄마의 행동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가정이 이미 무너졌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명절을 다른 집들처럼 보낸다고 해서 그게 가려질까?
나의 외고 합격은 그해 설날 가족모임의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특히 막내 작은 아빠는 내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자마자 "외고생!" 하면서 반겨주셨다. 그리고는 그때 돈으로 50만 원이나 하던 최신형 LG 싸이언 슬라이드폰을 선물로 주셨다. 5살 많은 사촌 언니도 "너무 잘됐다. 축하하고 고등학교 가서 즐겁게 지내."라며 덕담을 해주었다. 나보다 어린 사촌동생들을 자녀로 둔 작은 엄마들은 엄마한테 "형님, 좋으시겠어요~"라며 축하를 건넨 뒤, 나에게 "외고 갈려면 공부 어떻게 해야 돼?"라며 합격 비결을 물으셨다. 갖고 싶었던 핸드폰도 선물 받고 많은 관심과 축하를 받아서 나도 모르게 표정도 밝아지고 들떴던 것 같다. 사촌언니, 사촌동생들과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고, mp3 이어폰을 나눠 끼고 휘성, 클래지콰이, SG워너비 등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들을 들으며 오랜만에 명절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그런데 친척들이 다 가고 나서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넌 뭐가 그렇게 신나서 실실거리냐."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엄마는 내가 웃고 즐거워하는 게 보기 싫은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빠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우리 딸이 그 들어가기 힘든 외고에 들어갔다네. 하하." 하며 요리는커녕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면서 친척들과 하하 호호하는 것도 꼴 보기 싫었을 거고, 그런 아빠를 위해 엄마 역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음식을 하고 친가 쪽 친척들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 또한 착잡하고 심란했을 것이다.
그럼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면 맏딸인 나도 같이 기분이 안 좋아야만 했던 거였을까? 물론 나도 아빠를 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책임을 다하셨지만 엄마와 우리 남매들을 '장애물'이라고 표현했던, 가족을 뒤로하고 사랑을 찾아 떠났던 아빠가 체면 때문인지 뭔지 명절날 아무렇지 않게 우리 집으로 친척들을 불러서 장남노릇을 하려고 했던 게 이해가 안 됐다. 물론 아빠가 힘들게 버신 돈으로 학원을 다녀서 내가 외고를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던 것도 맞지만, 이럴 때만 '우리 딸'이라고 표현하는 게 내심 화가 났다. 하지만 오랜 고생 끝에 합격해 축하를 받는 그 순간만큼은, 다 잊고 마음껏 웃으며 보내고 싶었다.
사실 엄마의 그늘은, 내가 모르는 사이 이미 오래전부터 내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