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집 대신 학원으로 향했던 이유

by 조용한 생존자

아빠의 눈물을 보며 느꼈던 안도감은 얼마 가지 않아 불안감으로 변했다. 엄마가 아빠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았던 듯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듯, 엄마의 배신감과 불신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엄마는 사소한 일에도 아빠에게 화를 냈고, 그럴 때마다 불 같은 성격의 아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더 격렬해졌다.

"어휴, 지겨워."

결국 이 말만 남긴 채, 아빠는 또다시 집을 떠났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졌던 겨울방학이 끝난 후 중학교 입학식 날이였다. 전교 1등으로 들어온 친구가 단상에 올라 대표로 선서를 했다.


"저 친구 이름이 뭐야?"

"쟤가 전교 1등으로 들어왔대."


모두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 쏠렸다.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키도 크고 예뻤다. 부러웠다.

나는 2등이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다음엔 내가 저 자리에 서야지.'

그때부터 나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는 모든 게 새로운 곳이였다.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도 많았고 선생님들도 다 좋은 분들이셨다. 점심시간이면 교실 창문 너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오빠들을 구경하곤 했다. 친구들과 각자 '최애 오빠'를 정해놓고 눈으로 쫓으며,

"너무 잘생겼다. 너무 멋있어. 방금 봤어?"

를 연발했다. 당시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 류의 인터넷소설이 크게 유행해서, 서로 책을 돌려보며 외계어 쓰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평범한 여중생 같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우울한 표정으로 소주병을 옆에 두고 앉아 있었다.


"엄마는 왜 이런 꼴로 사는지 모르겠다."

"너네 아빠는 진짜 나쁜 인간이다."


엄마는 나를 마주 앉혀두고 하소연을 쏟아냈다. 맏딸인 나를 마치 다 큰 또래친구인 양 의지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고작 14살이었던 나는 엄마가 쏟아내는 그 감정들을 받아내기엔 너무 어렸다.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다.


나는 집을 피하기 시작했다. 집에 들러 감당하기도 힘든 엄마의 하소연을 듣느니, 차라리 1시간이라도 더 공부하는 게 나았다.

당시 다니던 외고반은 새벽 1시까지 수업이 있었다. 저녁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진 긴 수업. 게다가 나는 학원에 미리 가있었기에 나만의 자습시간을 1시간 더 추가한 셈이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갈 때면 늘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 들러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교복을 갈아입고, 따뜻한 밥을 먹고 학원에 갔다. 하지만 나는 교복차림 그대로 학교에서 곧장 20분을 꼬박 걸어서 학원으로 향했다. 학교 책과 학원 책을 함께 들고 다녔기에 내 가방은 늘 무거웠다. 저녁은 분식으로 대충 때우거나, 아예 먹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나를 두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기특하다' 또는 '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한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전교 1등은 못했지만, 5등이라는 성적을 받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기뻐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오랜만에 집으로 곧장 향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겨우 5등 갖고 좋아하냐?"


아빠가 외도를 안 했다면, 엄마, 아빠가 내 첫 시험의 성과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줬을까? 그건 지금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분명한 건 그날 이후, 나는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