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서 아빠를 만난 날
노량진은 아빠의 회사가 있던 곳이었다. 아빠한테 문자 한 통을 보낸 후, 무작정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싣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아빠한테 쓴 편지 한 통을 패딩 주머니에 넣고 손에 꼭 쥔 채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1시간 반 거리를 갔다.
노량진역에서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웃으며 나를 맞아주셨다.
"이제 혼자 여기까지 오고 다 컸네. 회 한 사바리 먹으러 갈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회라면 사족을 못 써서 아빠는 나를 '회 귀신'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토록 좋아하는 회를 사주신다며 아빠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지만, 나는 아빠가 반갑지만은 않았고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긴장이 돼서 웃음이 안 나왔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 횟집에 들어가 구석진 테이블에 아빠와 마주 앉았다.
"여기 광어회 소자 하나 주세요."
...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아빠한테 편지를 내밀 때 손이 떨렸다.
"아빠, 이거..."
아빠는 조금 놀란 표정을 하시고는, 이내 편지를 펼쳐 들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편지에 썼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세요. 저는 소중한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도 되고 싶어요.'
아빠는 편지를 읽으시고는 생각에 잠긴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나는 결심한 듯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요. 언제 한 번은 집에 불내서 다 같이 죽자고 했어요. 동생들도 너무 걱정되고 죽기 싫어요. 요즘에 맨날 울면서 자요."
내 이야기를 듣던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래, 미안하다. 같이 집에 들어가자."
그렇게 그날 바로 아빠차를 타고 같이 집에 올 수 있었다. 기대치 않았던 일이었다.
어떤 게 아빠의 마음을 움직였던 걸까. 자신이 집에 없는 사이에 아내와 네 명의 자식들이 이렇게까지 힘들어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문자를 보냈던 시점부터 심경의 변화가 조금씩 생겼던 걸까.
"아니 우리 딸이 이렇게 편지를 써 들고 그 먼 데까지 찾아왔더라니까."
집에 같이 들어간 아빠는 엄마한테 편지를 보여주고는 내가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다. 앞으로 다시 마음 잡고 우리 가족한테 잘할게."
아빠의 말을 듣고 이내 엄마는 아빠를 집으로 들였다. 우리 4남매 때문이 크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땐 우리 여섯 식구가 다 같이 살길 바랐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맏딸로서 우리 집에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 조금 뿌듯했다.
그날 나는, 이제 우리 가족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