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집을 나간 날, 우리 집은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밤 불이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by 조용한 생존자

아빠의 이상한 메모를 본 그즈음, 집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무난히 좋은 성적으로 최상위반에 들어가며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찼던 것도 잠시. 엄마와 아빠의 다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끝내 아빠는 집을 나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모를 만큼 한참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가 나간 후, 집에 있을 때면 안방에서 엄마가 작은 엄마, 외숙모, 고모, 이모 등 친척 어른들과 통화하는 소리, 때로는 우시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다.


"그 여자랑 지금 아주 살림을 차렸다니까. 집에도 이제 안 들어오고 연락도 안돼."

"아니, 형님,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니요. 참고 살라뇨. 정말 너무하시네요."

"글쎄 시댁 어른들은 참고 살라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진짜 미행이라도 해서 증거를 잡아볼까?"


어느 날 밤, 엄마는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셨다. 그러고는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다.


"아니, 올케랑 같이 택시 타고 '앞에 가는 차 쫓아가달라'고 했는데, 둘이 내려서 집에 같이 들어가더라니까."

어김없이 들려오던 엄마의 통화 소리.


그날 이후, 엄마는 처참히 무너져갔다. 나는 4남매의 맏딸이었고, 동생들은 12살, 9살, 5살이었다.


급기야 엄마는 우리 4남매를 불러놓고 이런 이야기까지 하셨다.

"다 같이 피켓 들고 시청 같은 데 가서 시위라도 할까."

"우리 집에 불내서 다 같이 죽어버릴까."

태어나서 처음 죽음의 공포와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무 슬퍼서 가출하고 싶어.'

그러자 친구한테 답장이 왔다.

'왜 슬퍼ㅠㅠ'

하지만 슬픈 이유를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밤에 잘 때마다 엄마가 몰래 들어와서 나와 동생들을 죽이거나 집에 불을 지르진 않을까 늘 불안했다. 너무 무섭고 서러워서 울다 잠드는 게 다반사였다. 그 시기, 뉴스에서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연이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충격적이고 슬펐다. 엄마가 한 말, 뉴스에서 본 장면, 엄마가 동반자살을 시도할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나는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집이나 지하철에 갇히는 악몽을 매일같이 꿨다. 어렴풋이 '인생이란 이렇게 허무한 거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의정부에서 노량진까지 지하철을 타고 아빠를 찾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