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아빠의 승진시험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

중학생이 되기 전 겨울방학의 어느 날

by 조용한 생존자

우리 집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보다 조금 전의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당시 내가 살았던 의정부는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원하는 중학교 지망을 받은 후, 뺑뺑이로 중학교를 결정하는 이었다. 대부분은 집에서 가깝고 같은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이 많이 가는 중학교를 1순위로 선택하고 그 학교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2순위, 3순위 학교로 배정받아 집에서 멀고, 아는 친구도 거의 없는 낯선 중학교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설렘반, 긴장반의 마음으로 중학교 배정이 결정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중학교 배정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통지서를 펼쳐 내가 배정받은 중학교 이름을 확인했다.

'하나, 둘, 셋.'


다행히 내가 1순위로 지망했던 가장 가까운 중학교로 배정되었고, 몇몇 친한 친구들도 같은 학교에 배정되어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교복도 예뻐 보였고, 내가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전히 애기 티가 나는 고작 14살 중학생인데도 왠지 내가 다 컸다는 기분이 들었고,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게 즐거운 겨울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아빠는 회사 승진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독서실에 간다며 자주 집을 나서곤 했었다. 우연히 안방에 들어갔는데, 아빠가 공부하고 있다는 승진시험 교재가 책상에 놓여있었다. 회사 승진시험은 어떤 내용이 나올까. 나는 호기심에 책을 펼쳐보았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책을 덮으려는데 어느 페이지 빈 공간에 아빠가 쓴 이상한 메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록 우리 사이에는 장애물이 있지만 우리 사랑을 막진 못할 거야. 사랑해.


이상했다.
갓 열네 살이 된 아이가 봐도 엄마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정체 모를 불안감이 스쳤다.


그리고 한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장애물.’


장애물이라는 게 뭘까.


그 단어 하나가 30대 중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 집의 공기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