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늘 (2)

엄마의 기분 아래에서 자라던 아이

by 조용한 생존자

엄마랑 남동생이 처음으로 군포 집에 왔을 때 일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들과 장난감, 싱크대 가득 음식물이 묻은 채 쌓여있는 그릇들, 세탁기 옆 가득 쌓여있는 빨랫거리. 엄마는 엉망인 집안을 보시고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울자, 나도 울었다.


"너는 왜 우냐?"

"□이가 불쌍해서요..."


내 대답에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걷지 못하는 시기부터 아팠던 남동생은 걷고 뛸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엄마', '아빠' 등 간단한 단어들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컸다. 귀엽게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던 애기 때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는데, 비니를 쓴 채 핼쑥해진 동생의 얼굴과, 눈에 띄게 어두워진 엄마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엄마는 동생의 암이 완치될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남동생을 돌보셨다. 각종 야채, 백숙, 전복죽, 심지어는 개고기까지 암환자에게 좋다는 음식은 다 해서 먹이셨다. 마늘에 항암 성분이 풍부하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마늘을 얇게 슬라이스 해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다음 '마늘 까까'라며 동생에게 먹이곤 했다. 동생은 빵, 과자, 젤리 대신 "마늘 까까 듀떼요~" 하며 마늘을 과자처럼 먹었다. 그렇게 엄마와 남동생은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와서 몇 밤 자고 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하길 반복했다.


엄마와 남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나는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친구랑 같이 놀다가 금세 친해졌다. 나이도 똑같았고 마음이 잘 통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한테 뭐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집에 먹을 게 마땅치 않았다. 돼지저금통을 가위로 잘라 대충 동전 몇 개를 들고 슈퍼에 가서 '자갈치' 과자를 사 왔다.


과자를 들고 친구랑 집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엄마랑 동생이 문 앞에 있었다. 엄마가 오는 날인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그때였다. 엄마가 나와 친구를 보며 대뜸 화를 내셨다.


"야! 너는 집안 꼴이 이런데 친구를 데려와서 놀고 싶냐? 그 과자는 어디서 났어? 어?"


엄마가 무서운 표정으로 아파트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친구는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고 나도 같이 울었다. 그렇게 친구는 울면서 집으로 갔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 엄마에 대한 서운함, 고작 과자 한 봉지 때문에 혼났다는 억울함, 그리고 친구와 마음껏 집에서 놀지도 못하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울면서 엄마한테 원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엄마는 □□이만 좋아하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놀란 듯한 표정이었지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으셨다.

만약 그 순간 "아니야, 너도 똑같이 내 소중한 딸이야."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그날의 기억이 덜 아프게 남았을까. 오로지 동생의 암을 완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셨던 나머지, 나는 다 크고 건강해서 손길이 덜 가는 아이처럼 느끼셨던 걸까.

하지만 그러기엔 나도 엄마의 돌봄이 필요한 고작 7살 어린아이였다.


겨울은 금세 찾아왔고,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다. 어린이집 재롱잔치와 졸업식에는 아빠만 오셨다.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아빠와 큰고모가 오셨다. 받아쓰기는 늘 100점을 맞았지만, 집에 가면 자랑할 엄마가 없었다. 예고 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 앞은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엄마들로 북적거렸지만, 나는 엄마가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신발주머니로 비를 막으며 집까지 뛰어가곤 했다. 아빠도 회사일에, 동생 병원비에, 나와 여동생까지 신경 쓰시느라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셨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니, 어쩌면 우울한 엄마의 모습을 보느니 엄마가 안 오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가 없어서 서럽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가을이 되자 학교에서 운동회를 했다. 초등학교에서의 첫 운동회. 청팀, 백팀으로 나눠서 응원가도 부르고, 콩주머니 던지기, 계주, 달리기 시합, 줄다리기 등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 운동장은 열렬한 함성소리와 응원소리로 가득찼다. 반 친구들 모두 들떠있었고, 나도 나름 그 분위기를 즐겼다.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가족들 손을 잡고 김밥, 유부초밥, 과일, 소시지 등 집에서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싸 오신 도시락을 먹으러 갔다. 순식간에 나는 혼자 남겨졌다. 친구들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들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웃으며 점심시간을 즐기는 동안, 나는 운동장 한 구석에 앉아 아침에 아빠가 출근길에 가까운 분식집에서 급하게 사주신, 알루미늄 호일로 감싼 김밥 한 줄을 먹고 있었다. 외롭고 처량했다.


그때 같은 반 친구 엄마가 나를 불렀다.

"얘, 너도 이리로 와서 같이 먹자."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성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름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동희'라는 얌전하고 착했던 여자 아이.


"배고프겠다~. 와서 편하게 먹어. 이거 치킨너겟이야. 한 번 먹어봐."


돗자리에 앉아있던 동희네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아 내가 앉을자리를 비워주었다. 동희 어머님은 내가 혹시 불편해할까 봐 고기며, 과일이며 좋아할 만한 음식을 먼저 웃으며 권하셨다. 동희와 동희 가족들은 나를 다정하고 친근하게 대해줬다. 그때부턴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학교 참관수업날 드디어 엄마가 왔다. 나는 엄마가 온 게 너무 좋아서 수업 중에도 자꾸만 엄마가 서 계신 뒤쪽을 돌아봤다. 그때 색종이로 간단히 헬리콥터 만들기 활동을 했다. 길쭉한 색종이 가운데를 중간까지만 쭈욱 잘라서 양 옆으로 가른 후, 슬리퍼를 벗고 의자에 올라가서 살짝 떨어뜨리면 '팔랑팔랑' 돌아가면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이 예쁘고 신기했다. 엄마가 와서 기분이 더 좋았던 건지 헬리콥터를 날리며 많이 웃었다.


엄마랑 같이 집에 가는 것도 좋아서 싱글벙글 웃음이 났다. 형형색색 낙엽이 쌓인 가로수 길을 엄마와 함께 걸었다. 그런데 엄마는 집에 가는 내내 웃지 않으셨다. 그러다 엄마가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냐?"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 왠지 웃거나 즐거워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그때부터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계속 반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밝은 햇빛을 가리는 그늘 속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비를 함께 막아줄 우산이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