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메리는 양
당신의 양
어느 골짜기에서 태어나
다리 밑 인형 장수에게
빨간 코트를 입은 아가씨에게 팔려왔다
아가씨는 아름답고
꿈을 꾸는 사람
그림자가 있는 사람
메리는 그림자를 먹고 피어나
회색 솜털이 점점 바래진다
메리는
침대 위에서
잠든 아가씨의 꿈을 대신 쫓는 전령
밤새 구우가 있었다
아가씨 머리맡 술 병을 쥐고
커다란 모자를 쓰고 나타난 새는
시커먼 모자 속에 비늘을 숨기고 있다
비늘은 어느 누구에게서 훔쳐온 것
달이 비추는 호수에서 건져온 것
나만이 아는 비밀
언젠간 흩어질 은유의 끝
구우는 때로 찾아들고
때로 멀리 떠나버렸다
메리는
거짓말쟁이 양
울고 있는 아가씨에게
은밀히 다가와 속삭이는
그러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하나의 인형
아가씨가 울 때면
메리는 창밖을 가리고서는
포근하고 퉁퉁한 배를 내미는
사랑스러운 양
아가씨는
메리의 배를 좋아한다
구우
아름다운 비늘을 가진 새
큰 모자는 어디론가 버려지고
비늘만 남은 물고기
아니 새
아가씨는 비늘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구우는 사랑받는 새
아가씨는 구우의 회색빛 깃털만 쓰다듬었다
메리는 거짓말쟁이 양
메리는 아가씨의 공포를 비밀로
하지만 메리는 또
그 통통한 배를 내밀곤 하지
사랑스럽고
언젠가는 초원으로 떠날
메리
비밀스러운 양
아가씨는 어느 날 목도리를 매고 왔다
목도리는 아가씨가 사랑하는 사람이 준 것
회색 모직에 수놓인 파란 실
메리가 배를 내밀어도
아가씨는 메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음날
구우가 목도리를 훔쳐갔다
아가씨는 울고
메리는 아가씨 대신 꿈을 찾아 초원으로
하지만 이내 돌아오는
마음이 고운 양
메리
울고
울다
아가씨는 메리를 보지 않게 되었다
이제
메리는 인형
꿈속에서 뛰놀던 유니콘들은 서쪽으로
토끼들은 수풀 속으로
아가씨는 구우를 쓰다듬었다
구우의 비늘은 거짓말
초라한 회색빛 깃털
하지만 아가씨는 비늘을 피해 또 깃털만
아니면 허상만
아가씨는
이제
누구를 전령으로 꿈속을 헤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