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titl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퀼티 Mar 03. 2017

비틀비틀, 꺼억, 꼬옥.

영화 <북촌방향>

술을 먹을대로 먹고 비틀대다 잠깐 편의점 의자에 앉았다. 금방 잠에 들었고 꿈을 꿨다. 우연히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와 잔뜩 취해서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에서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유모를 일이었다. 아무런 말들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꿈에서 깨 그 대화를 상상하다 보면 어딘가 불안해졌다. 바람이 불어 꿈의 세계가 일거에 사라지고 현실이 발 밑으로 육박할 때 나는 완전히 홀로가 된 기분을 느꼈다.


,





비틀비틀: 우연의 미로에서


성준은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 사는 선배 영호를 만나려 한다. 성준은 다짐한다.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서울을 통과할 거다. 그리고 집으로. 슝슝.

 

물론 그런 일은 없다.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서울을 통과하려던 성준에게 우연들이 찾아든다. 함께 일했던 여배우를 세 번이나 만나게 되고, 영화학과 학생들과 합석하게 되며, 선배 영호의 일행(보람과 중원)과 술자리를 갖고, 옛 연인인 경진과 그녀와 똑 닮은 술집 '소설'의 주인인 예전과 사랑을 나눈다.

성준은 내내 술을 마신다. 비틀비틀. 비틀거리면서 공간과 시간이 뒤틀린다. 반복 또 반복이다.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경진과 예전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영화를 찍는 사람인지 (사진을 찍는 영화팬에게) 피사체인지도 알 수 없어진다. 그리고 다시 술집 '소설'에서 한 잔.

우연하게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을 이십 분 만에 네 명이나 만났다는 보람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한다. 그때 성준이 말한다.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이렇게 이유 없이 일어난 일들이 모여서 우리 삶을 이루는 건데 그중에 우리가 일부러 몇 개를 취사선택해서 그걸 이유라고 생각의 라인을 만드는 거잖아요.


결국 모든 것은 이유없는 우연일 다름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대강 접고 반응하고 살아가지만 실체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고 나발이고 사실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 말 그대로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너무너무 외롭고. 어디에 기대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보람은 잃어버린 강아지가 기댈 존재는 자신 밖에는 없다며 강아지가 불쌍하다고 엉엉 울지만, 정작 본인 또한 길 잃은 강아지마냥 자신의 존재를 성준에게 확인하려고 한다. 제멋대로 널뛰는 마음이란 북촌이라는 세계에서는 우연이 모여서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것이며, 나의 의지로 작동되는 실체라는건 이 세계에 없다. 결국 취하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이유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꺼억 : 그대를 쫓다가


그러면서도 자꾸 불안하다. 성준은 계속해서 우연히 마주치는 여배우에게 그냥 조화로운 움직임들을 느끼고 살면 된다며, 그게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공교롭게도 세 번이나 마주친 여배우가 성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반면, 경진과 닮았다는 이유로 예전은 성준에게 필연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성준 역시 생각의 라인을 그으며 살아갈 뿐이다.

낯선 여자의 꽁무니만을 쫓는 유부남 영화감독. 홍상수 영화에 도돌이표처럼 등장하는 캐릭터의 문법에 성준 역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또한 현재를 도외시한 채 다른 여자를 쫓는다. 하지만 그 여자가 현재가 되어버리는 그 순간 주인공은 여자에게서 도망친다. 술에 취해 옛 애인 경진의 집으로 쳐들어간 성준은 울며불며 기어코 경진의 침대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아침이 밝자 성준은 경진에게서 도망친다.


난 전화도 하지 않을 거야. 그게 나한테도 좋지만 그게 너한테도 정말 좋은 거야.


언제나 홍상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외도에 빠지게 되는 여인들은 결코 나의 현재가 되지 못한다. 다들 바람같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주인공이 현재로부터 도망침으로써 여인들은 언제나 가능성의 영역인 미래에 남아 있게 된다. 왜 나는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자꾸 미래만을 쫓는가.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시간에 쫓기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에 목이 매달려있는 운명이다. 결국 우리는 만족할만한 현재에 있을때에도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붙잡기위해(또는 잊기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간은 잡히지 않고,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이미 미래는 현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영원히 우리는 시간에 다가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섭고 또 무섭다.

영화에서 술집 '소설'의 주인 예전은 성준에게는 과거이자 미래이고 또 현재이기도 하다. 과거 애인인 경진에게서 온 문자메세지에 성준은 성가셔하면서도 그녀와 똑같이 생긴 예전을 따라 달려간다. 마치 시간에 쫓겨 괴로워하면서도 눈앞의 시간을 쫓는 우리의 운명을 그림자처럼 비추는 듯. 성준은 예전과 하룻밤을 보낸뒤 경진에게 했던 이야기를 뉘앙스만 달리해 반복한다.


근데 알지? 우리 다시 만나면 안돼. 야, 네가 내 말을 좀 믿었으면 좋겠다. 우린 정말 이렇게 헤어지는게 좋아. 내가 알아.


재밌는 점은 과거에 경진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던 성준이 예전에게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미래에서 과거로 날아온 성준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성준의 시간은 균열을 맞이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미래가 엉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과연 내일 성준은 떠날 수 있을까?




꼬옥 : 악어의 눈물만


우리가 어찌할 바 없는 우연들은 결국 과거와 미래를 뒤틀어버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북촌을 배회한다. 마치 영화가 다시 시작되는 것처럼 성준은 북촌 외곽을 돌고, 선배 영호와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영화에 관계된 네 명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 성준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끌리듯 북촌으로 다시 진입하고 만다. 북촌의 표지판 앞에서 성준은 자신의 팬에게 사진을 찍히게 되는데, 그의 표정은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그가 북촌에 영원히 박제라도 될 것마냥.





그렇지만 성준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우연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다. 쫓아오는 시간으로부터 괴로워하며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일때까지 취할 수 밖에. 영호 선배를 만나고, 피아노를 치고, 경진(또는 예전)을 찾아가 그녀의 침대 위에 올라가기 위해 또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그는 변명한다.


현실 속에서는 대강 접고 반응하고 살 수 밖에 없지만 실체에서는 우리가 포착할 수 없이 그 수없이 많은 것들이 막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아마 그래서, 우리가 판단하고 한 행동들이 뭔가 항상 완전하지 않고 가끔은 크게 한 번씩 삑사리를 내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닌가 제가 생각은 해보는데...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제가.


그렇다. 홍상수의 영화가 사람들에게 위로 또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며 결핍을 이겨내기 위해 했던 많은 실수들이, 삶이란 것의 근거없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구구절절히 변명하기 때문이다. 지극히도 인간다운 변명이다. 하지만 왜 그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우울해할까. 왜 성준은 자신을 따라 담배를 피우던 영화학도들에게 쌍욕을 내뱉으며 따라하지 말라며, 부끄럽지도 않냐며, 따라오지 말라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질렀을까.





영화의 제목이 북촌이 아니라 북촌 '방향'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시간과 공간은 고정되는 법이 없다. 하나의 우연만으로 모든 것은 재배열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북촌이 아니다. 문제는 생각의 라인. 우리는 듣고싶은대로 생각의 방향을 정해놓고 살아갈 뿐인데 이 '생각의 라인'이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던 경진의 집앞으로 성준을 이끌었던 것일뿐. 수많은 점들을 이어 방향을 만들어냈던건 순전히 성준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북촌은 목적지가 아니고 방향일 다름이다. 결국 꿈보단 해몽이다.
 

이상한 현학적인 말로 나를 헷갈리게 하지 마라. 나 그런 말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다 안다.


사석에서 고현정이 홍상수에게 했다던 말처럼 사실 영화도, 말도, 환상도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북촌에 그대로 박제될 지, 북촌을 지나 슝 통과할 지는 순전히 성준에게 달렸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그냥 이해하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