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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퀼티 Aug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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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방과 후 일을 하고 아픈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조반니. 아빠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고, 친구들은 조반니의 아빠가 감옥에 갔다며 조반니를 따돌린다. 켄타우로스 축제의 날, 배달되지 않은 엄마의 우유를 받으러 갔다가 깜빡 잠이 든 조반니는 좋아하는 친구 캄파넬라와 신비로운 은하철도에 탑승하게 되고, 각 역을 다니며 기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종착지를 향해가던 중 석탄자루 암흑성운에서 캄파넬라가 사라져버리자 조반니는 엉엉 울며 잠에서 깨어나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서 캄파넬라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행방 불명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누군가의 부재로 상심한 그날의 밤하늘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걸려있었다. 저기 별들은 분명 가엾은 것들의 눈물이리라. 내가 언젠가 꼭 꼭 저것들을 품어줘야지. 아무도 없는 공사장에 걸터앉아 한참을 운명에 대해서 생각했다. 고사리 손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책이 들려있었다. 나는 정체도 모를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두 손 가득 힘을 쥐고 어둠 위를 달렸다.


시간이 지났다. 동화를 읽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어른이 되면서 포기한 것들을 손가락으로 세어가면서, 나는 꽉 쥔 주먹 아래로 흘려버린 소중한 것들을 떠올렸다. 나의 운명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흘러갈거야. 그날로부터 앳된 다짐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그 소리에는 희망과 불안이 공존해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때가 되어 나는 동화(인지 일기인지)를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책을 좋아하는 소녀(아마도 벨의 영향). 소녀는 근사한 미소를 가졌고, 맑은 말씨를 쓰는 아이. 아이는 으레 그렇듯 버림받아 도시를 헤매이다 환상의 세계로 발딛는다. 그리고 비극. 환상. 비극, 비극, 비극....


또 밤길을 걷는다. 조반니와 캄파넬라의 운명을 생각한다. 어째서 해사한 것들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을까. 이제는 다 지어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앉는다. 그래. 어쩌면(아마도) 남은 사람들에게 진짜 삶과 직면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겠지.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잃어버리는걸까. 솜이라도 삼킨 것 같았다. 은하를 넘어 다가오는 세계의 마지막에서 오롯이 남은 두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습한 기운이 들어가 나를 주저앉히는 것이다.


"캄파넬라, 이제 우리 둘만 남았어. 우리는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가자. 아까 그 전갈처럼, 나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을 백 번이라도 태울 수 있어."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캄파넬라 눈에 아름다운 눈물이 반짝거렸습니다.


맑은 것들은 자기가 맑은 줄도 모르고 사람들을 비추기 바빴다. 그 반짝거리는 것들 사이로 반사된 나의 얼굴은 너무 탁하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나 역시 언젠가의 조반니였을텐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도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시대의 동화란 어른을 어린 아이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포기한 것들을 되짚어가는데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디에도 면목이 없었다.


조반니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저렇게 엄청난 어둠도 두렵지 않아. 반드시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가겠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리 함께 가자."


그대로 멈춰서 밤하늘을 봤다. 별들 사이로 일렁이는 무언가. 쨍하고 하늘에 빗금이 갔다. 그 틈으로 오래전 잃어버린 은하수들이 쏟아져 내게 인사를 건네고, 웅크리고 있던 소년이 빗금을 뛰어넘어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소년은 조반니같기도, 캄파넬라같기도, 나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왔다. 책장을 뒤적였다. 책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꺼이 은하철도의 기차표가 주어질 해사한 사람들을 위해.


옛날 고샤라란 선승이 살고 있었다. 오랜 고행 끝에 광야에 이르러 선승은 모랫바람에 늙고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선승이 깨어보니 온갖 동물들이 그를 둘러싸고 걱정하였다. 선승은 이미 며칠을 굶은터라 불을 필 기력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한 마리 토끼가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나이든 선승에게 자기를 먹이게 하였다. 선승은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에 강한 충격을 받았으며, 마치 혼이 빠진 것 마냥 터덜터덜 마을로 돌아와 그대로 열흘을 드러누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거대한 인과의 섭리를. (데즈카 오사무,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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