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titl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퀼티 Dec 11. 2018

우리 어미 원숭이

1. 마포로 이사하고 본가에는 이틀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퍽 서운해 하는 눈치로 매주 내게 언제 오느냐를 물었고, 오랜만에 간 집에서 동생은 나를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더 우리 엄마 슬프게 하면 가만안둬. 하고 으름장도 놓은 것 같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니. 그렇게 말하고 다음날 짐을 싸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 엄마. 가는 내내 동생의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천애고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2. 어머니에게는 동생이 진정되면 다시 내려간다고 했다. 어머니는 늘 형제간의 불화(또는 무관심)를 슬퍼했고, 내가 그 말을 하자 서럽게 울었다. 단장(斷腸). 어미 원숭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안해요, 미안해만 했다. 하지만 집 밖을 나서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어머니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되뇌었다. 문이 닫히고 나는 한참을 문을 누르고 있었다. 부디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보러 나오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사람의 흔들거리는 어깨를 상상하며, 나는 가득 팔에 힘을 줬다. 마치 문 안에서 끔찍한 좀비나 악령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나는 내 존엄성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섰다.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 뻔할지라도.

3. 지금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살아왔다. 내게 지켜야 할 것들과 포기해야 할 것들은 잼이 발린 식빵처럼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처음으로는 식빵의 테두리부터 제거하고, 다음 모서리를 제거하고, 반으로 가르고, 가르고, 가르고.... 결단을 쌓아올릴 때마다 보상은 확실했다. 식빵 위에 올릴 베이컨, 치즈, 양상추 같은 것들. 하지만 맛있는 것들을 먹을 때마다 식빵이 필요했다.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밀려오고,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기를 포기했다. 저기 여의도 사람들은 스테이크라는걸 먹는다면서? 고기랑 야채랑 치즈도 있어, 유감스럽게도 빵은 없지만. 그래, 빵은 이제 됐어. 정말 됐어.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술만 잔뜩 취해 집에 들어와 뻗는다. 나는 됐어. 정말 됐어. 메아리가 삼협(三峽)을 가득 메운다.

4. 모든 남성은 아버지를 죽이거나 아버지처럼 된다. 프로이트의 명제는 초등학생 때부터 내 삶의 테마였다. 나는 아버지를 내 상상의 무덤에 묶어놓고 죽이고, 또 죽였다. 가사 노동을 한다, 제사를 폐지한다, 어머니를 괴롭힌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 어른이.... 이 말을 적는 나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한지. 더욱이 내가 정말 화가 나는 사실은 오이디푸스도, 프로이트도, 라캉도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어머니마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통 은유로 가득한 이 글이 어쩌면 이렇게도 비겁하고 초라할 수 있는지. 나는 안다.

5.
蜀江水碧蜀山靑 촉의 강물 푸르르고 촉의 산도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 천자는 아침 저녁으로 양귀비를 그리워하니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울리는 풍경소리는 간장을 도려내는 듯하네

매거진의 이전글 책상 위에 쏟은 물, 그리고 연말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