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안해. 한마디의 첨탑이 쌓여간다. 처음엔 돌무덤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그림자 때문에 나는 빛에 허덕인다. 빚에 허덕인다. 이정도 밖에 안되서 미안해. 하지만 차마 그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어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나도 세상에 소망과 실망을 다 가지고 태어났어. 그것들이 까닭없이 너의 숨을 조이는 동안에도 나는 생애의 무서움 때문에 숨을 토해내기 바빴단다. 뭐가 나한테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솔직할 수가 없었단다. 내가 너의 내가 못되서 미안하다. 내가 못돼서 미안하다.
2.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탁해져있었다. 허황된 말들을 쫓고 얼마나 탁해졌는지를 두고 겨루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누가 웃었더라. 확실히 나는 아닌데. 그런 나를 보면서 누가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도 떠날 때는 웃고 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짠짠 시끄럽게 부딪히면서 다들 입가가 기계인형처럼 씰룩씰룩 움직이더라. 너무 추운데 턱 관절이 아파서 술 취한 줄도 모르겠더라. 우리는 왜 우리를 혐오하기 위해 서로를 만나는 것일까. 너도 가엾지만 나도 가여워서 그것이 염치가 없어서 차마 안아줄 수가 없던데. 참. 같이 찍은 사진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서 보낼 수가 없었어. 너의 탁함을 가늠하는 나의 눈이 가장 탁하게 찍힌 탓으로. 잘가. 잘가. 그래도 만나서 좋더라. 그래도 웃을 순 없더라.
3. 아. 자유롭다. 아무도 내게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 누구도 소중히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우받지 않는다. 나는 나로써 산다. 스스로에게 감화되고 스스로에게 기대어 귀의에 이른다. 그렇게 잘난 줄 알았는데 지금에 이르러보니 내 발우에는 나조차 담겨있지 않구나. 그렇다면 인생이란 뭘까. 음. 나도 잘 모르겠다. 나를 용서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오르내린다. 언젠가 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용서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초라하게 늙어갈까. 해답은 누구의 손에. 아. 운명이란 지옥의 기계로다.(장콕토)
4. 탐(貪)이라는 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의 특징은 첫째 몸집이 거대하다는 것. 게다가 욕심도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뭐든지 먹어치워 버리는 속성이 있어 흙이든, 강물이든, 산, 바다 할 것 없이 먹어버린다. 물론 인간도 예외가 아니며 인간의 창조물마저도 해치워버린다. 맛과 모양에 상관없이 무조건 배 속에 쳐넣는다. 탐욕적이고, 추악하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한계를 모른다. 만족이란 단어조차 그에겐 없다. 결국 그는 자기마저 입속에 처넣는다. 탐은 어둠만을 남긴다. 그리하여 無가 된다. 욕망의 끝인 것이다.
5. 결국 품성이 당신의 운명이다.(헤라클레이토스)
*창천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