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매달렸을까
'성과평가 공개가 오늘 오후 3시부터 진행됩니다.'
알림을 보고 시스템에 들어가
지난 해 성과평가 결과를 보려고
클릭하는 손이 약간은 떨리는 것처럼 보인다.
늘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일이 전부였던 적도 없었다.
내 스탠스는 그저 성실하게 하고 싶었고,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작은 지적 하나에도 하루가 망쳐지는 느낌이다.
그제야 알게 된다.
나는 이미 이 일에
생각보다 깊이 매달려 있었다는 걸.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자존감이 아주 조용히 일과 엮인다.
성과는 수치로 남고,
평가는 문장으로 기록되고,
회의에서의 반응 하나가
내 위치를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건 잘 처리했어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이고,
“아쉽네요.”라는 말 앞에서는 괜히 작아진다.
그 감정의 폭이 커질수록
일은 더 이상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흔히 일에 집착하는 사람을 야망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안한 사람이 더 깊이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잘하지 못하면 밀려날까 봐, 쓸모없어 보일까 봐,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까 봐.
그래서 더 애쓴다.
필요 이상으로 책임지고, 경계를 넘어서 도와주고,
“괜찮습니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일은 점점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진다.
일 때문에 자존감이 흔들릴 때는 대개 일이 과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가 일에 너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좋으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고, 성과가 나쁘면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이 된다.
이 단순한 공식이 어느새 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쉬는 날에도 메일을 확인하고,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 괜히 잠이 얕아진다.
일이 끝나도 마음은 퇴근하지 않는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봐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까지 매달렸을까.
생활비 때문일 수도 있고, 전문성 때문일 수도 있고, 쌓아온 시간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대부분은 이런 이유다.
이 일이 나를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줬기 때문.
일은 원래 삶의 일부여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삶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일의 기복에 따라 자존감도 같이 흔들린다.
그래서 회복의 시작은 일을 덜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분리해내는 데 있다.
나는 이 일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아니다.
이 문장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연습.
조직 안에서의 나는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이다.
보고서를 쓰는 나, 회의에 앉아 있는 나, 성과표에 기록되는 나.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부모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다.
일 때문에 자존감이 흔들릴 때, 우리는 더 잘하려고 애쓰지만 사실 필요한 건 더 잘 쉬는 것도,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일과 나 사이에 한 칸의 여백을 만드는 일.
그 여백이 있어야 평가도, 성과도 나를 삼키지 않는다.
다음 글에서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마음을 지키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