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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Oct 13. 2021

낭만주의에는 낭만이 없다

식인 장면을 보며 식사를 한 고야, 검은 그림들

미술사에서 낭만주의, 로맨티시즘은 대표적인 오역이다.

낭만주의 화풍이라고 하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그림일 것 같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어원은 ‘생각을 헤매다’는 뜻의 라틴어 ‘알루키노르alucinor’다.

화가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히려 괴기스럽고 때로는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그림도 많다.


위작의 미술사(최연욱) 중에서





고야의 암흑기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말년에 ‘검은 그림들(black paintings)’이라는 14점의 어두운 그림을 남겼다.

40대에 귀가 멀고 정신병에 시달리면서 집 안에 칩거하며 집 1층과 2층에 14점의 벽화를 남긴 것이다.

팔거나 대중에 공개할 목적이 아니었고 온전한 정신으로 그린 작품도 아니기에

기괴한 상상력이 최고치로 발현돼 있다.


이중 유독 시선을 끄는 작품은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다.






신화에 의하면 장차 태어날 아들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것이란 예언에 겁을 먹은 사투르누스는 갓 태어난 아들을 삼켜버린다.

루벤스도 같은 장면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지만 고야의 버전만큼 잔혹한 광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인육을, 그것도 제 피붙이의 어린 육신을 으적 으적 입안으로 넣어버리는 순간이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고야는 이 작품을 하필이면 부엌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밥을 먹을때마다 제 자식의 육신을 씹어삼키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봤다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도 눈 둘 곳은 없다. 그 맞은편에는 역시 고야가 그린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자리했다.


유디트가 적장의 목을 베는 유명한 성경 속 장면이다.


안 그래도 미쳐있는 사람이 식사때마다 잔혹한 두 살인(한 점은 식인까지)을 마주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이 그림들은 현재는 캔버스에 옮겨 복원된 상태다.

벽화의 경우 벽 자체를 뜯어내서 천 위에 엎어놓고 벽 자재를 긁어내서 맨 안쪽 물감층만 남기는 방식으로 캔버스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흐릿해져 잘 보이지 않지만

아들을 삼키고 있는 아버지 사투르누스의 성기는 일부 발기한 상태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린 배경은 당시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에 쳐들어오면서 자행한 고문, 살인 등을 보고 느낀 환멸과 인간에 대한 비관주의라고들 한다.

이중 삼중의 패륜을 저지르면서 사투르누스 본인은 성적 흥분을 느꼈다고 하니

고야가 인간의 역겨움을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인 셈이다.


이 고야가 바로 옷을 입은 버전과 벗은 버전 두가지로 유명한 여성의 누드화로 유명한 바로 그 낭만주의 화가다.




‘옷을 벗은 마야’ (원어로는 ‘마하’, 이름이 아니라 옷을 잘 입는 여성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와

아들을 삼키고 있는 사투르누스는 모두 벌거벗은 육체를 다루고 있지만

꽤나 다른 인상을 준다.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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