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기만 해도 학습 능력을 떨어뜨리는 주범
요즘 초중등학생과 기성 세대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이들이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점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물론이고 중요한 내용을 학습할 때도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거나 최소한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한시도 스마트폰과 떨어지지 않고 싶어하는 강력한 의지는 마치 스마트폰이 이들의 수족같이 작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스마트폰 가방에 넣어두세요” 같은 말을 하면
“엎어놓으면 되잖아요” / “손에 안닿는 곳에 두면 되잖아요” 라는 말이 돌아온다.
나는 다년간의 강의 경험을 통해 시야 안에 있는 스마트폰의 존재 자체가 학습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완고하다. 내가 스마트폰을 집기라도 하면 주저없이 다시 뺏어가려고 힘을 주거나 난동을 피우는 등 폭력적인 반응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노모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라는 명칭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이 내 손에 없다는 공포를 뜻한다.
세상에 갖은 전자기기들이 발명된 바 있지만
스마트폰만큼 빠르게 우리 삶에 침투해
신생아에게 공갈 젖꼭지를 뺏은 것만큼의 반응을 청소년, 성인들에게 보이게 하는 기기는 스마트폰이 처음이다.
나는 중요한 업무나 대화를 할 때 반드시 스마트폰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가방 안에 넣는다. 여의치 않으면 무음모드로 해놓고 화면이 보이지 않게 엎어놓는다.
그렇게 해도 내 주의 집중력이 분산되는 느낌을 받는다.
만프레드 슈피처의 <노모포비아>에 실린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두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학습 비디오를 보여주고 내용을 필기, 암기하게 했다. 한 그룹에서는 일부러 한 연구자가 학생인척 가장해서 투입돼 있다가 강의 시청 중 총 두번 일부러 스마트폰 벨소리를 울리게 하고 5초 가량 찾는 척 했다. 다른 그룹은 인위적 방해 없이 연구를 시행했다.
두 그룹은 스마트폰이 울렸던 시점에 언급됐던 내용에 대한 시험 문제를 풀었고 결과는 예측가능하다시피 주의력과 뇌 저장능력 면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던 그룹의 학생들이 절반에 못 미치는 역량을 보였다.
내 스마트폰이 아닌데도, 단순히 남의 스마트폰 소리가 울리기만 해도 인간의 주의집중은 분산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다.
스마트폰의 파괴력은 상상보다 더 심각하다.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엎어두기만 해도 우리의 집중력은 흐트러진다. 스마트폰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 자체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주의집중력이라는 자원은 유한하다.
또다른 실험에서 학생들에게 집중할만한 과제를 주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모두 끈 상태로
1. 책상 위에 엎어두기
2.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
3. 다른 방에 두기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 거리를 두어보았더니
1,2번 그룹의 학생들은 확연히 주의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폰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지금 네트워크에서 소외되어 있고 뭔가 중요한걸 놓칠 수 있다는 고립감, 혹은 말 그대로 중독 증상에 따른 불안이 발현된다.
지구상에는 이미 인구 수보다 많은 수의 스마트폰이 보급되었고
2007년에야 세상에 최초로 나온 이 스마트폰은 학생들의 주의 집중을 비롯해 수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교통사고 사망 원인 1위였던 ‘술’을 추월한 것을 비롯해서 말이다.
학교에 무선 인터넷을 보급하고 개인 전자기기를 나눠주는 등 디지털 친화적으로 변모한 국가들의 평균 학업성취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반면 학교에 스마트폰 들고오기를 금지시킨 일부 국가에서는 학업성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 관측됐다.
우리의 정신을 끊임없이 흐트러놓는 그 놈을 담배피울때, 화장실갈때, 잘때도 꼭 끼고 사는 그런 상황이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것도 옛말이 됐다. 고작해야 하루에 서너시간의 티비 시청이 비만, 고혈압, 우울증, 무기력감, 지능 저하 등의 문제를 불러온 데 비해
현대인들은 적게는 하루 평균 3시간 많게는 7시간 이 기기에 매달려 있다.
업무처리 등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남짓이고 나머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동영상 시청 등 여가활동이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 조작이 익숙한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세대는 인지 능력에 크나큰 피해를 받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2018년 애플의 거대 투자자 2곳이 ‘스마트폰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소송전이 일어나면 애플이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경고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