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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Jul 24. 2021

아이패드 종이필름 왜 붙이세요?

인간은 최적경로로 움직이게 설계되지 않았다.

얼리어답터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IT문외한으로서 ‘아날로그-디지털-다시 아날로그’로 쏠리는 사람들의 행태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책도 종이책이 아니면 잘 읽히지 않고 아직도 종이신문을 구독한다. 스케줄 관리 애플리케이션이 있지만 손글씨로 일정을 기록한다.

그런 내가 오직 ‘종이책’이 들고다니기 무겁다는 이유로 아이패드의 세계에 입문했으니

주변에서 입을 모아 ‘종이 질감 필름’, ‘애플펜슬 펜촉’을 추천해서 당연한듯이 함께 구입했다.




종이필름 붙일거면 종이를 쓰는게 낫지 않을까?


그림이 업인 친구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던진 말이 인상깊었다.

“인간은 아이패드같은걸 만들어놓고 굳이 거기에 종이질감을 살리겠다고 필름을 붙이고 연필 느낌이 살도록 펜촉을 달고 브러시를 선택하잖아. 애초에 그냥 종이에 연필로 그려도 됐을텐데 이렇게 돌아온건 왜일까”


너무 재밌는 발상이었다.

이어폰도 마찬가지다. 유선이어폰의 시대는 끝난것처럼 보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무선 이어폰으로 갈아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에서 잘 빠지는 문제, 자주 충전을 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유선 시절에는 없던 걱정이다.


인간은 이처럼 아날로그의 단점을 신기술로 극복한 후에 오히려 이전의 느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한성이 주는 매력


아이패드 드로잉만을 두고 얘기하자면 답은 쉽다. ‘수정가능성’과 ‘확장성’이라는 무한의 가능성이다.

연필, 펜, 붓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는 붓터치를 할 수 있는 시도에 한계가 있다. 깨끗하게 지우는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종이는 그만큼 얇아지니까. 채색을 한 후에 되돌리기 힘든건 유화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이패드는 수천번의 스트로크도 간단한 동작으로 되돌릴 수 있다.


확장성은 무한한 도화지, 무한한 팔레트가 주는 편리함이다.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에 혁명을 가져왔듯 이제 우리는 무한한 캔버스를 스크롤해가며 길고 긴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다. 아이패드만 있으면, 또 필요에 따라 유료앱을 결제한다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상상가능한 무한대에 가까운 드로잉을 구현할 수 있다. 한정된 여백이 주는 한계는 끝났다.


이 공식을 증명했지만 여백이 없어서 증명은 생략한다는 말이 핑계로 들릴 수 밖에 없는 시대다.


아이패드는 전자책 리더기 겸 가벼운 문서 보관함이 됐다. 매일 쓰는 글도 이제는 아이패드와 키보드로 작성한다.


기술의 껍데기는 바뀔지언정 그 안의 메시지만큼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분야도 많지만 굳이 인간 고유의 영역인 얼굴인식 등을 완벽히 구현하고자 도전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자 도전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미련하게 연필 대신 애플펜슬로 필압을 구현하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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