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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Jul 13. 2021

구독경제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직관을 대체할 수 있는가



"마 최선을 다해주이소"

구독경제의 늪-취향을 외주 주기


그 어느때보다 커스터마이징이 자유로워진 시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한정된 옵션을 결제만 하는 구독경제,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다. 정보과다(information overload) 때문이다. 정보나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피로감을 느껴 중요하지 않아보이는 정보를 통째로 무시하거나 선택을 보류하는 현상이다.


이 순간에도 유튜브에는 매초 새로운 클립이 올라온다. 우리는 무한한 영상 중에 내가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특정한 검색을 하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어떤 영상을 소비한 후에 곧장 애플리케이션이 추천해주는 너댓개의 썸네일 중 하나를 겨우 고르는 한정적인 조건에서의 선택을 할 뿐이다.


구독경제의 핵심은 알고리즘이다. 무한 뷔페처럼 넷플릭스 영상을 본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선택지 중에 몇 개를 골라내는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전부다. 남자 CEO가 도입한 '브래지어 월별 구독'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가격대와 사이즈만 선택하면 제품을 알아서 배송해준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나를 위한 선한 맞춤비서일까? 구독서비스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알고리즘의 우선 목표인 점을 고려하면 의아한 지점이다. 알고리즘은 알아서 최선을 다하는데 관심이 없다.



영화 해석 찾아보기-판단을 외주 주기


영화나 책 제목을 검색하면 으레 따라붙는 '해석', '결말', '스포'라는 연관검색어들이 있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해석을 설파하기 보다 이미 주어진 남의 해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판단조차 외주를 주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불확정성을 견디지 못하는 한국인 특유의 입시발 정답 찾기라는 이유가 있다. 현실이 그렇듯이 예술작품 역시 해석이 모호한 지점,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걸 견디지 못하고 정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 모드


왜 이렇게 이 시대의 한국인들은 가성비에 집착할까. 그렇게 에너지 절전 모드로 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먹고사니즘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대단히 독보적인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수출하는 일부 업계를 제외하고는 서로 제살깎아먹기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목표가 너무 높은 목표 착시 현상도 있다. 양극화된 사회인만큼 상위계층의 라이프 스타일이 평균인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비루하게 느껴진다. 여유 부릴 시간 없이 과로로 내몰린다.


제도적 문제도 있다. 쓸데없는 일,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뛰어들었다 실패해도 굶어죽지 않고 재기할 수 있다는 안전망에 대한 믿음이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벌인 인공지능 알파고는 바둑판에 놓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거기에 점수를 낸다. 알파고가 특히 다른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점은 바둑판에 비어있는 모든 자리를 계산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마치 인간처럼 가능성이 높은 수들만을 압축해서 따진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을 혹시 그만둘 것이냐는 우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알파고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인간만이 아름다운 바둑을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선택에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절대적인 점수값은 존재하지 않는다. 입시에 실패했거나 사업에 실패했더라도 그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았다가 성공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소년등과는 마치 저주와 같다는 옛말처럼 빠른 성공이 인생 전체에서 볼때 좋지 않은 결과일 수 있다.





인간의 선택은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느껴질 뿐, 시간이 가면 재해석되고 끊임없이 의미가 다시 부여된다. 우리는 이런 선택의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 이세돌 9단의 말을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알고리즘은 선택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인간만이 아름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에너지 절전 모드로 살게된 이유에 대한 근거는 브런치 @문마닐 작가님의 아이디어입니다. 마닐님, 세련님, 호두님과의 음성채팅 덕에 탄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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