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지도, 최초의 사전은 공허함에서 온걸까
사람은 무력할 때, 공허할때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작업에 몰두한다.
초등학생 때 우리집에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퍼스널 컴퓨터 단말기 한대가 있었다.
내가 인터넷에 너무 빠질까 우려한 어머니가 인터넷 회사에 전화해 연결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내가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거라고 어머니는 기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나만의 역사지도를 만드는일에 빠져들었다.
그 내용은 간단하다. 집에 있는 위인전기, 역사책, 백과사전을 읽다가 특정한 날짜를 발견하면
예를 들면 다윈이 태어난 날이라든가 종의 기원이 출판된 날을 찾으면
나는 일일이 날짜와 내용을 타이핑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순서대로
그때는 태깅이나 정렬법을 몰랐기 때문에
워드프로세서에 2월 15일 자리를 찾아서 엔터를 치고 새로 생긴 빈 공간에 내용을 채워넣었다.
작업은 한번 시작하면 두어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때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건 신문 귀퉁이에서 쉽게 볼수있는 '오늘의 역사' 코너 같은 것이었다.
365일의 표제어마다 최소 한가지의 사건이 달리면
매년 어떤날이되면 그날 역사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기념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구글검색창에 몇월 며칠을 검색하기만해도 그날이 유엔이 지정한 아동권리협약의 날이라거나, 과학자 누가 태어난 날이라는 정보를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아마 검색 엔진은 그런 서비스를 제공했을거다.
그걸 몰랐던 나는 세계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싶었나보다.
기본적인 툴도 활용할줄 몰랐기 때문에 노가다로 하나하나 입력했던 워드파일은 이제는 어딘가 사라지고 없다.
아마 플로피디스켓 어딘가에 담겨있지 않을까
요지는 이런거다. 정리벽이 심한 성격도 있지만
당시 내가 오늘의 역사 지도 만들기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는 허탈함과 공허함이었을거라 짐작된다.
하루종일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네트워크의 세대에서 튕겨져나와 외톨이가 된 초등학생은
너무나 혼란스러운 나머지 무엇이라도 정리하고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것같다.
지금은 그런 작업들을 모두 검색엔진에 외주주고 필요할때 찾아본다고 해놓고 사실 일년내내 찾아보지 않지만 말이다.
최초의 사전, 최초의 지도는 모두 탐구심이라기보다는
헛헛함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드는 날이다.
다들 자신의 생일을 구글이나 위키백과에 검색해보자.
세상의 모든 날들은 저마다 특별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고맙게도 누군가 이미 정리해놓았으니 과실을 깨물기만 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