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생산성 앱, 불렛 저널, 마스크팩 피부 관리, 망할 놈의 오버나이트 오트밀 따위로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치유책에 끌리는 건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규율과 새 앱, 더 나은 이메일 정리법, 또는 식사 준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만 더하면 우리 삶이 다시 중심을 잡고 기반을 다질 수 있다고, 미디어가 쉽게 장담하기 때문이다.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생산성 애플리케이션이 뭔지 이제는 잘 알지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아했다.
제품생산용 스마트폰 만큼이나 생경하게 들렸다.
애초에 스마트폰이란 전화, 문자, 사진기, 앨범, 주소록, 그외 게임이나 인터넷 서핑 등 오락, 아주 가끔 일을 하는 서브 도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마치 스마트폰으로 3D프린팅이라도, 못해도 메모장에 뭐라도 써내야 한다는 듯한 절박함이 그 단어에 담겨있었다.
생산성 앱 하나 제대로 다루는게 없으면 지나친 아날로그 인간 취급을 받는 시대다.
나는 지금도 탁상달력과 손으로 쓰는 스케줄러를 사용하고 종이 신문을 구독한다.
학습에 관련한 한 실험에서 새로운 단어를 암기할때 눈으로 스크린만 들여다보았을때보다
손으로 종이에 직접 쓰고 따라 읽는 등 오감을 다양하게 활용할때 기억에 더 잘, 오래 남는다는 결과도 있듯이
종이 넘기는 맛, 손맛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존재할 공산이 크다.
얼마전 한 영어 지문에서 이런 내용을 봤다.
예술가들이 근대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논문같은 서류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곤 했는데, 현대에 올수록 웹 공간이라든지 음성채팅, 화상회의, 온라인 전시 등으로 작가들의 소통 영역이 온라인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 글은 흥미롭게도 온라인 매체가 영속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의문으로 끝을 맺었다.
당장 전기가 끊기면, 재난 상황에서 충전을 못하면, 이용하던 플랫폼이 서비스를 종료하면 영영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얘기다.
요즘 수학능력시험 지문답게 '온라인에 저장해놓은 콘텐츠는 영원하다'는 선입견을 노린 함정 지문이라 재밌었다.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라면 의외로 종이와 펜이 더 쓸모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