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완전폐지' 여성의 신체결정권
"아주 위대한 작곡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를 구하려면 당신이 옆 침상에 8개월 동안 누워서 당신 몸과 그의 몸을 튜브로 연결하고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하시겠습니까?"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에 꽤 많은 수의 여학생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남학생의 경우 단 한 명도 자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질문은 '임신'의 메타포다. 몇 개월간 자기 몸의 영양분을 직접 나눠주면서 하나의 생명을 길러내는 일. 여성은 그 일에 천성적으로 적합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임신가능성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희생을 통한 잉태와 출산에 상대적으로 열린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이해했다.
2019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기존 낙태죄가 헌법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개정을 주문했다. 여성계는 환영했다. 임신중단(여성의 의지로 인한 임신 상태 중단을 강조하는 표현)이야말로 여성의 신체 결정권이라고 봐서다.
정부 개정 입법안은 '14주'라는 다소 자의적인 제한을 담고 있어 반발을 부르고 있다. 여성들이라면 흔히 알듯이 정혈('생리', '월경'을 대체하는 언어로 페미니스트들이 주창하는 용어다. 정액이 정결하다는 의미의 '정'자를 쓰듯이 여성의 월경도 긍정적인 뜻을 담자는 것이다) 주기는 칼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첫 정혈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이 주기가 더욱 불규칙해 여성이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임신중단을 결심했을 때는 이미 늦는다는 얘기다.
14주라는 이른 기간 제한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임신중단을 태아의 생명권 문제로 보려는 프레임은 기만이다. 몇 주차부터 생명인지에 첨예한 논란이 존재하는 태아의 생명을 그렇게 중시하는 한국사회라고 보기 힘든 까닭이다. 임신부를 폭행해 유산하게 하면 '폭행죄'로 처벌받는다. 살인죄를 묻지 않는다. 이미 태어난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것에도 법은 미온적이다. 이혼한 가정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는 흔하며 이들을 고발하는 '배드파더스'라는 사적 제재는 오히려 수사의 대상이 됐다. 명백한 아동혐오인 '노키즈존'에 민심은 그럴만하다고 고개를 주억인다.
임신부의 뱃속에 있을때는 해쳐서는 안 될 불가침 영역인 소중한 생명이지만 태어나고나면 멋대로 해꼬지해도 된다는 듯한 메시지는 말이 안 된다. 게다가 1986년생 범띠 해, 1988년 용띠 해, 1990년 백말 띠의 해에 '여자 아이는 기가 세다'는 근거없는 주장에 힘입어 잔뜩 행해진 여아 감별 낙태 때는 방관하던 사회가 이제와서 태아의 생명권을 들먹이는 것 또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재의 낮은 출생율은 사회 변화 탓보다 애초에 가임 여성인구의 수가 성감별 낙태로 터무니 없이 낮기 때문이다. '남아선호사상'은 '여아살해사상'이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대구경북지역의 셋째 성별 통계를 보면 여아 1명당 남아가 2.5명 꼴로 태어났다. 자연상태에서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딸만 연달아 낳은 집에서 셋째는 무슨일이 있어도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로 셀수없는 여아를 낙태한 결과다. 이 결정을 여성 혼자 내렸을리 만무하다.
정부는 '남용 가능성'이라는 황당한 우려를 하고 있다. 임신중단이 진정으로 남용될 때는 뭘 하고 있었나. 임신중단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손가락 접합 수술이 존재하고 성공률이 높다고 해서 무턱대고 손가락을 자르는 사람은 없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한 선택지로 존재하는 게 의학 기술이다. 임신중단이라는 선택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임신의 가능성이 있는, 이미 임신한, 혹은 임신할 일이 없고 임신할 수 없더라도 여성이라는 존재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결정권을 갖는다. 그것이 점이든 종양이든 자의로 제거할 권리도 당연히 있다. 그런데 수정이 된 태아만큼은 여성에게 제거할 권리를 주지 않겠다는 건 사회의 이기주의다. 여성 혼자 임신하지 않는다. 남성은 쏙 빼고 여성과 의사만을 처벌하는 낙태죄는 여성에게 가하는 사회의 굴레이고 현실에서는 결별, 이혼시 남성이 괘씸죄로 여성을 협박하는 무기로 활용된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낙태죄 존속인가. 낙태죄의 완전폐지를 요구한다. 임신중단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