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자들>...남자가 '디폴트'인 세상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마스크 크기는 남성에게만 맞춰져있어 여성 의료진의 감염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호주대 연구진이 국제 의학저널 ‘Anaesthesia’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얼굴에 맞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지 알아보는 ‘마스크 적합성 검사’에서 남성 의료진은 95%가 자신의 얼굴에 맞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여성 의료진은 85%에 그쳤다. 이 연구는 남성에 비해서는 여성, 백인에 비해서는 아시아계의 얼굴 형태가 마스크 제작 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내용이다.
한국에서 제작된 성인용 마스크의 기준 역시 남성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신간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 지적하는 바와 맥을 같이 한다. 마스크의 크기 뿐 아니라 스마트폰 크기, 적절한 약 복용량이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이 소개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조롱으로 뒤덮였다. “남잔데도 스마트폰이 큰데 내가 여자인가”류의 조롱, “물건을 만들때는 어쩔 수 없이 디폴트값이 필요한 법”이라고 자못 엄중하게 효율을 내세우는 의견도 보였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건 ‘분노’다. 많은 수의 남성들이 “내가 마스크 크기를 정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했단 말이냐”, “별 것도 아닌데 여자가 굉장히 손해본다는 식의 망상”이라고 이 책의 주장을 매도했다.
간단히 대답하자면 남성을 디폴트값으로 놓는 대다수 기업과 기술의 선택은 잘못이 맞고 그로 인해 여성은 실제로 생명을 위협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스크 크기로 인해 감염 위험이 높아지는 여성 의료진의 경우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료진의 최소 4분의 3 가량이 여성이다. 코로나 확진자를 대면하는 의료진의 반 이상이 여성이고, 코로나 위험에 시달리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다.
모든 것은 비용으로 환원 가능하다. 범죄의 타깃이 덜 되기 때문에 아낄 수 있는 안전에 대한 비용이 그렇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나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과 에너지도 이득으로 계상된다.
남성 소비자, 남성 환자, 남성 시민으로서 우리 인구의 절반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득을 보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피해를 보라든지, 그동안 받은 걸 내놓으란 주장이 아니다. 디폴트값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와 여성과 온 사회의 배려를 나눌 시간이다.
혜택 받고, 배려 받고 있고, 고려되고 있다는 것은 큰 자원이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어디든 훌쩍 떠날 때,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는 혹시 목적지가 노키즈존은 아닌지 검색한다. 비장애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는 공간 곳곳이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는 문턱이고 계단이고 발디딜틈 없는 엘리베이터다. 모든 것은 비용으로 환원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최소비용을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