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는 쓰나미가 휩쓸고간 인도네시아 해변가를 취재하다가 본인의 인간성을 의심했다고 한다.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무더기로 뒤엉킨 시신더미를 보면서 슬픔을 느끼기보다 ‘이 앵글을 뉴스에 보여주면 효과적이겠다’ 따위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취재하면서 나 역시 ‘내가 인간인가’라고 자문하는 경험을 했다.
자식의 시신을 확인하고 터덜터덜 걸어나와 넋두리인지 도통 알아듣기 힘든 얘기를 털어놓는 가족들을 마주하고
속으로 ‘지금 이 말을 헤드라인에 써야겠다, 서둘러서 기사 작성하지 않으면 마감에 늦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내가 무서웠다. 동시에 일을 해내지 않으면 난 그저 이곳에 온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압박도 느꼈다.
무엇이 옳은가.
직업적 소명과 인간적 고민 사이에서 선택을 해나가는게 사회인의 일상이다.
때로는 일관적이지 못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내가 대가이거나 대단한 유명인이라면 차라리 쉬울것도 같다.
개인으로는 아쉬운 결정이더라도 온 인류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공익적인 결정이란 것도 있으니까 말이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인상파화가 클로드 모네는 사랑했던 여인 카미유의 임종을 그림으로 그려냈다(임종을 맞은 카미유)
인상적인 것은 죽어가는 카미유의 얼굴에 도는 푸른빛이다.
모네는 이 그림에 대해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소중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나는 놀라고 말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를 추적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네를 나무랄수있을까?
다소 찜찜하지만 명작을 그려냈다고 모네를 굳이 칭찬해야 할까?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나가고 있는 여러분을 응원하며.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