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과 최찬욱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
기사쓰기 교육을 받을 때 일이다. 유명 신문사의 데스크급 기자가 와서 보도자료를 나눠줬다. 실제 사건이었는데 조금 각색하자면, 한 중년 여성과 사귀는 사이었던 남성이 교제기간동안 여성이 혼자 사는 집 비밀번호를 알게됐고 헤어진 후에 여성의 집에 몰래 침입해 금붙이를 훔쳐갔다가 절도죄로 입건된 일이다.
이때 일간지들은 일제히 범인의 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사랑해서 그랬다".
그의 변명은 이렇다. 여성과 재결합하고 싶어서 일부러 위장 강도극을 벌이면 여성이 무서워서 자신에게 연락할거라 생각했다는 거다.
백번 양보해서 사실이라고 해도 절도죄와 피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수업시간에서 나만 유일하게 "00대 남성, 전연인집 금붙이 털어"라는 식으로 썼다.
범인의 말을 제목과 기사에서 모두 삭제했다. 들어줄 가치가 없어서다.
그때 지도를 맡았던 기자는 내가 틀렸다고 했다.
이 사건이 하루에도 몇백건 몇천건 일어나는 숱한 범죄와 다른 이유. 굳이 이 사건을 보도해야 하는 이유는 범인의 한마디가 특이하고 재밌어서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는 버젓이 살아있고 아직도 위협감을 떨치지 못하고있을터다. 기자 보도 준칙에는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을 경우 피해자의 성별을 밝히지 말것 등의 조항이 있다.
나는 여기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싣지 말 것'을 추가하고 싶다.
상식적으로 볼 때, 범죄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말할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내용이 보도의 중심이 되면 피해자의 정의구현은 어려워지고 2차 피해의 우려도 생긴다.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은 신상공개 현장에서 마스크없이 맨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을 '악마'에 비유하며
자신을 막아준 게 고맙다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범죄자가 자신을 악마에 빗대 영웅화 하는 게 왜 위험한지 역설했다.
최근 신상공개가 결정된 최찬욱 역시 마찬가지다. 취재진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더 심해지기전에 어른들이 구해주셔서 감사하다", "저 같은 사람도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아연하다. 수상소감인가?
많은 강력범죄자들은 관심을 즐긴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일부러 강력범죄자의 변명을 일절 보도하지 않는다.
기자라면 사건의 본질을 가릴줄 알아야 한다. 범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화젯감이라고 무엇이든 그대로 받아적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