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적 팩트집착 제목달기
이준석 씨가 국민의힘 당대표로 뽑혔다. 연합뉴스를 위시한 언론은 일제히 ‘헌정사 첫 30대 당수’라는 제목으로 보도에 나섰다.
이런 제목달기는 뉴스의 본질을 전혀 짚지 못하는 게으른 행태다. (그리고 첫 30대 제1여당 당수가 정확하다. 10대 공동 당대표가 있었던 정당도 있다)
기자들은 교육을 받을 때부터 특정한 사건의 ‘특별한 점’을 강조하는 제목달기를 교육받는다.
똑같은 교통사고라도 5중 추돌이면 그 부분을 강조하고, 차가 폐차됐지만 다친 사람이 없다면 그 점을 강조하라는 식이다.
즉, 하고많은 사건들 중에 왜 이사건이 보도될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증명하라는 거다.
대다수의 정치부 기자들은 이런 관성에 젖어 이준석 씨의 특징, 그가 세운 최초 기록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게 진짜 선거 결과를 요약하는가?
헌정사 첫 30대 당수가 맞지 않냐고? 맞다.
그렇지만 이준석씨가 30대라는 점이 당선에 주효했을까? 30대 여성이 나왔어도 당선되는 선거였나? 30대 남성 페미니스트가 나와도 당선되는 선거였을까?
이번 당대표 선거의 주된 축은
판사출신 4선 의원 나경원씨와 마이너스 3선이라고도 불리는 원내경험 전무한 젊은 남성의 대결 구도다.
흠잡을데 없는 경력의 여성이라도 유리천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 당대표 선거 결과다.
결국 ‘여성 차별’이 다른 차별들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은 미국 대선에서도 확인됐다.
인종차별이 미국의 가장 큰 갈등축이라고 흔히 알고들있지만
흑인 대통령은 나왔어도
국무장관 출신의 백인 여성 힐러리 로댐 클린턴에게는 대통령직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준석 씨가 선거전 내내 감추지 않았던 스탠스는 여성 차별, 소수자 차별로 정리할 수 있다.
소수자 배려룰을 특혜로 명명하고 모두 없애겠다고 했던 점, 굳이 페이스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진중권 씨와 날을 세워가며 본인은 안티 페미니스트임을 만인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점
이게 이준석 씨의 성공요인이다.
이른바 ‘이대남’의 표심을 잡을 수 있다면 무선이라도 괜찮아, 아무리 잘나도 여자는 좀 ->이게 이번 당대표 선거 결과를 압축한 메시지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헌정사 첫 30대 당수라는 제목을 붙이는 건
마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라고만 부르는 것 만큼이나 핀트가 나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여성’, ‘여성 대통령 후보’로 적극적으로 셀링하지 않았다. 여성 인권 관련한 특별한 공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관련 정책을 펴기 위해 출마한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성이었더라면 낙선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보다 장자가 지지자들의 향수를 더 진하게 자극하지 않는가?
부디 이준석 씨가 혼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다리를 걷어차는 식의 행보를 그만두기 바란다.
이제는 방에서 페이스북 게시물에 좋아요 싫어요 누르고 댓글 다는 한 명의 남성이 아니라 공당의 대표다.
무조건적인 다수결이 민주주의식 정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