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팬츠 입은 여자는 못 도와줍니다

무고죄에 절대 걸리지 않는 팁 대방출

by 기자A
2021년 7월 7일 오전 9시 20분 구글 '핫팬츠 지하철' 검색결과. 성인인증 화면이 뜬다. 팩트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기사들이 함께 뜬다.



얼마전 밤 10시께 산책을 하다가 앞에 택시가 급하게 멈춰선 걸 보았다. 뒷좌석이 열리더니 만취한 여성이 굴러 떨어졌다. 가방 속 내용물이 다 쏟아졌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택시기사는 내려서 난감한듯 여성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다가가자 기사는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여성분이라 내가 부축을 못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망상이자 주장이자 핑계다. 여성들에게 "네가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면, 어떠한 위급상황에서라도 너를 돕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협박이다. 결국 내가 여성을 일으켜 부축했다.



'핫팬츠 입고 쓰러진 여성, 남성들 발만 동동'. 지난 7월 6일 기사화된 사건으로 복수의 비슷한 기사들이 대동소이한 제목을 달고 있다. 서울 지하철 열차 안에서 한 여성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하의가 짧아서 다른 남자승객들이 도와주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가짜뉴스다. '카더라' 낭설만 듣고 기자가 상상한 내용이다. 실제로 당일 사건 현장과 관계자를 직접 취재한 기자는 없었다. 이후에 이 기사가 가짜뉴스임을 밝혀낸 기자는 사실확인에 겨우 10분이 걸렸다고 강조했다. 10분도 들이지 않고 편견으로 가득찬 기사 날조하기가 이렇게 쉽다.


짧은 바지는 야하지 않다.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을 보는 남성의 시각이 야하다.



이 기사는 위급상황이더라도 남성이 여성의 신체에 손을 댔다가는 성추행범으로 몰려 고초를 치를 수 있다는 비뚤어진 망상을 언론이 확대 재생산한 예다.



당시 사건현장에 있었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자신의 SNS에 "여성이 쓰러지자마자 근처에 있던 세 명의 여성이 일사분란하게 처치를 했고 다른 남성들도 경찰에 전화를 하는 등 도왔다. 여성들이 민첩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더 나선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 방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최초 기사화 내용을 반박했다.

이 기사가 가짜뉴스임이 밝혀지는데 며칠의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험상황이라도 여성에게 손을 대면 나중에 성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는 환상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꽃뱀, 무고를 일삼는 여성이라는 편견의 변주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면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다. 그게 도리고 정의다. 그런 상황에서 성추행을 저지르는 인간 이하의 행동이 벌어진다면 그 사람을 처벌하면 되고 이 사회의 법과 공권력은 그런 상황을 가려낼 수 있다.

남자들의 앓는소리는 오히려 심신미약 상태의 여성을 예비 성범죄 피해자,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 응급환자가 아닌 노출한 차림의 여성으로만 보고 있다는 자기고백이 아닌지 묻고 싶다.

부산의 국밥집 성추행 사건 등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를 왜곡되게 보도하고, 그 왜곡된 보도를 그대로 믿고 가짜 억울함을 답습하는 남성들이 문제다.



빌딩 화장실 청소 등 저임금 노동은 중장년 여성의 몫이며 남성은 이런 일자리를 기피한다.


여자 화장실에 발 한번 들였다가 벌금, 따위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남성 범죄자가 여성들에게 위협감을 주면서 들어오지말라는 만류에도 지속적으로 여성 화장실을 침범한 등의 사건임을 쉽게 알수있다. 여기에다가 여성 청소노동자를 끌고와서 남자들도 불쾌하다고 아우성치는건 본인의 미비한 사고력을 인증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저임금 일자리인 청소 미화 노동이 중노년 여성의 전유물이 된 것은 비극에 가깝다. 이들이 성범죄 위험군이라는 증거도 사례도 없고 앞으로도 있을것같지 않다. 남자화장실에 들어오는 여자 미화원 때문에 볼일을 못보겠으면 그 시간에 여자화장실 불법 촬영 카메라를 근절할 방안이라도 생각해보는게 이롭다. 최소한 찍지라도 않길 바란다.



여성들이라면 누구든 안다. 애매한 추행은 신고할 엄두도 못낸다는걸. 사회는 여성 피해자의 옷차림을 평가하고 외모를 돌려보고 행실을 문제삼을 것이란걸 여성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정서는 그래서, 신고된 성범죄는 무고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범죄자들은 변호인의 조력, 법의 허점을 이용해 처벌을 피해간다. 미국에서 신고된 강간범죄의 1퍼센트만이 기소되고 그 중에 또다시 1퍼센트만이 유죄와 형 집행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더 심하다. 선진국 중 강간범죄율이 낮기로 유명한 일본은 사실 통계의 오류를 안고 있는 나라다. 성범죄를 신고했을때 피해자가 당하는 2차 가해가 극심하고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는 비율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신고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숫자로 볼때는 성적으로 안전한 나라지만 실상은 범죄를 당해도 어디 호소할 데도 없는 불모지인 셈이다.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는 소리를 유독 약자들에게만 한다. 그렇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이 싫으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지문 날인도 거부해야 하고 공항에서 몸수색 짐수색도 거부하면 된다. 여성과 의도치 않게 몸이 스쳐 범죄자로 몰릴까 두렵다면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성범죄율 0의 세상이 된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조심할 생각이 없으면서, 머릿속에 가득찬 여성혐오를 반성할 생각도 없으면서, 기회가 있고 안잡힐거란 보장이 있으면 성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있으면서 앓는 소리하는 우리 연약한 남성들은 오늘도 '한남'이라는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꽥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남성들의 앓는소리가 여성을 향한 협박(blackmail)이라는 표현은 중국의 페미니스트 Yuzhou님의 아이디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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