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공적인 자연스러움
최근 개점한 유명 백화점 건물을 둘러보고 왔다. 식물원을 연상케하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기념 사진을 찍기 좋은 스팟에 열댓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지나치면서 언뜻 보니 정작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사진을 찍고 있지 않은데 사람들은 기다린단 말인가. 할법한 착각이었다. 식물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사람은 이른바 '도둑촬영을 당하는 나' 콘셉트로 카메라를 전혀 보지 않고 유유자적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 사람의 SNS에 올라올 결과물은 자연스러운 일상을 본의아니게 포착한 한 장면이겠지만, 촬영 현장은 사뭇 달랐다. 열댓명의 사람들과 지나가는 무수한 행인들이 투명인간인것처럼 모델과 사진가 역할을 맡은 두 사람은 작품세계에 심취해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에 대한 갈망은 연예인들의 SNS에서 기원한다. 연예인들의 일상생활 사진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하는 와중에 우연히 포착된 것처럼 보인다. 또 하나의 중요한점은 이들이 혼자 있지 않았단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좋은 경험을 하더라도 직접 찍은 티가 나는 셀카를 올리면 '혼자 간 사람', 혹은 '사진을 부탁할만한 일행이 없는 상황'으로 읽힌다.
그들만이 정체를 알겠지만 도대체 고용한건지 아니면 정말 사진찍는걸 좋아하는지 모를 누군가가 이들의 사진을 늘 찍어주는 모양새다.
비연예인들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깊은 애정을 수반한 관계에서다. 연인간에 찍고 찍히는 사진은 애정이 담겨있어 더욱 뜻깊다고들 한다. 친한 친구사이에도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서로 찍어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사진에 대한 욕구는 높은데 비해 이런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언제나 존재하진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진 동맹'을 맺는다. 맛집에 가서, 유명한 건물 앞에서, 혹은 그저 골목길에서 서로의 무심한듯 시크한 사진을 찍어주는 거다.
유명 디저트 가게에는 이런 사진을 서로 찍어주는 연인과 친구들로 성황이다. 재밌는 것은 이들이 앉아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고 떠나기까지의 대화의 대부분이 '인생 사진(인생에서 손꼽히게 잘 나온 사진)'의 구도와 각도와 색감과 보정과 전송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재단된 프레임 안의 나는 내가 선택한 범위의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양쪽 벽면에 거울이 달린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사람처럼 우리의 이미지는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디부터가 가상인지, 혹은 그 간극을 구분하는게 의미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와 만나서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시절은 지났다고 단언하기엔 이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기념하는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연출하고 편집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의 보편 보급, 애정을 갈구하는 인정욕구, 촌스럽게 굳어있는 '사진이라고 광고하는 사진'에 대한 반감. 이런 집단적 기호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