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B 권하는 사회의 <예술하는 습관>
예술가들은 일상도 특별할까? 그들만의 루틴이 따로 있을까?
이런 호기심으로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을 집어들었다. 여성 작가, 화가, 음악가 등 여성 예술가들의 일상 루틴을 상세하게 소개한 책이다.
사회생활 선배 중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자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 톱니바퀴가 순탄히 얽혀돌아가야 하는데 커리어, 취미, 이성관계가 그 세 가지다”
살아보니 삼 분의 이는 맞는 말이었다. 세 번째 톱니바퀴를 나는 ‘친구’로 바꾸고자 한다. 여성인 나에게 이성교제(남자친구)와 가정을 꾸리는 것(남편과 더불어 따라오는 그의 가족, 가사노동, 임신 출산 육아의 가능성)은 나머지 두 바퀴를 멈추게 하는 요인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이 책에 나온 예술가 중 대다수의 인생 역시 가족, 남편, 가정생활이 이들의 발목을 잡으면 잡았지 절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클라라 슈만은 다섯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아홉살 때 데뷔무대를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재능있는 작곡가 겸 음악비평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클라라 슈만은 유명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다. 승승장구했던 연주자의 삶은 결혼과 함께 막을 내렸다. 예민한 남편의 기벽 때문이다.
로베르트는 자신이 작곡할 때 부인더러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가 영감을 받아 작곡에 매진하는 동안 몇 주가 걸리건 클라라 슈만은 피아노를 연습할 수 없었다. 결국 로베르트가 술을 마시러 나가는 시간에만 토막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집안일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와중에 클라라 슈만은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며 연주회를 병행했다. 남편의 수입이 충분치 못해서 자신이 연주회를 열어야만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은 뒤 클라라 슈만은 연주 투어를 지속하며 명연주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메리 셸리 역시 독박가사의 틈바구니에서 천재성을 펼쳤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수준의 정규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오직 독학과 상상력으로 오늘날 SF 소설의 선구적인 저작인 프랑켄슈타인을 펴냈다. 메리 셸리의 남편은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다. 한 전기 작가에 따르면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화가 잭슨 폴록의 아내 역시 화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아내 리 크래스너는 고등학생 때부터 화가의 길을 걸었지만
폴록과 결혼한 후 그가 숨지기까지 14년간 예술가로서의 경력은 단절 상태였다. 죽음 이후에야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고 본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리 크래스너는 잭슨 폴록에 대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면서도 “그는 격동적인 남자라서 함께하는 삶이 결코 평온하지는 않았다”고 술회한다.
선배의 조언이 남자를 향한 것이었다면 더 말이 됐을거다. 남자가 커리어, 취미, 아내(여자친구)라는 세개의 톱니바퀴를 가지면 그는 안정적으로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초상화가 앨리스 닐은 두 아들을 혼자 키우는 비혼모였다. 그는 한 강연에서 “제게 좋은 아내가 있었으면 더욱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 거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줄리아 워드 하우의 경우는 더 심했다. 그의 남편은 문학 활동을 적극 반대했다.
남편의 반대와 여섯 아이 양육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그는 글을 썼다.
남편 몰래 시집을 출판해 남편과 불화를 빚기도 했다.
남편, 가정, 가사, 육아, 집안의 대소사라는 존재가 유독 여성의 발목을 잡는 것은 한국만의 일도 아니며 여성 예술가만의 고통도 아닐 것이다.
비섹스, 비연애, 비결혼, 비출산을 줄여서 ‘4B’라고 한다. 한국 래디컬(근본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조어이자 운동이다.
‘하지 않음’이 결핍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관계맺기를 ‘한다’와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미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비혼의 삶을 겪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미혼과 결혼하지 않음을 선택하고 고수하는 비혼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커리어와 취미와 소중한 인간관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가 나를 이기적인 여자라고 부르더라도 하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내 인생을 완성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