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절벽에서 싸우는 여성들
유서깊은 미국 사립대학 영문학과의 첫 여성 학과장이 (비교적) 젊은 동양인이라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체어’는 한국계 캐나다인 배우 산드라오가 이끌어가는 시리즈로 시즌 1을 선보였다.
한 에피소드에 25분 남짓이라 6화를 하루만에 다 달려버리고 말았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 작품이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 이를 통해 현실을 꼬집는 방식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주인공 김지윤은 40대 중반의 영문학 박사로 재미교포 2세다. 의사가 되길 바랐던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살림 비슷한 것도 손대보지 않았지만
결국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돈과는 거리가.먼 영문학자가 됐다. 시와 소설을 마음껏 읽고 싶었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은 꿈도 있었지만
현실은 학생들의 수업 등록율을 끌어올리라는 학장의 불호령에 절절매는 하루하루다.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어쩌다 독신으로 나이만 들어가고
과의 다른 남자 교수들은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부인, 내조, 가정이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인스턴트 끼니 때우기가 지겹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오해를 받을만큼 소탈한 학과장이면서 옳은 일이라고 믿으면 궂은 일도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에 없을법한 착한 사람이다.
소수인종이자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기에 능력있는 흑인 동료 교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일단 감투를 쓰고 나니 상황이 어렵다. 이것만 처리하고 저것만 처리하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주변에 읍소하느라 지칠대로 지쳐간다.
결국 지윤은 자신에게 맡겨진 학과장(더 체어)이라는 위치가 보상이라기 보다는 형벌에 가깝다고 여긴다.
째깍거리는 시한폭탄 돌리기 중에 누군가는 그 폭탄이 여성의 손에 있을 때 터지길 원한다는 대사가 그렇다.
지윤을 학과장으로 발탁한 것 자체가 능력주의에 따른 보상이라기 보다는 ‘유리절벽’으로 의심되는 상황이 계속된다.
학과는 여러모로 난관에 부딪혔다. 조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 자리를 여성에게 일임하고 실패시 ‘여자 리더’ 탓으로 모든 것을 넘기려는 시도를
유리절벽이라고 한다.
브렉시트 후 테레사 메이 총리가 전형적인 예다.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의 존재 자체가 소수자에게 자기 증명의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백인 남성이었다면 학과장에 오르기까지 몇 퍼센트가 온전히 본인의 공인지 아무도 묻지도 계산하지도 않을 터다.
지윤은 끊임없는 주변의 의구심, 게다가 가끔은 자신의 의심에도 마주친다.
나는 과연 내 힘으로 이 자리에 오른 것일까.
시즌2에서는 너무 벅찬 짐들은 조금 내려놓고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길 바랄 뿐이다.
젊은 흑인 여성 교수 야즈라는 야심에 찬 인물이다. 학생과 수업과 학문을 사랑한다.
야즈라가 개설한 ‘섹스와 문학’은 동시간대 백인 노교수의 지리멸렬한 강의실을 텅 비울 정도로 센세이셔널하다.
그러나 종신 교수직 심사를 맡은 그 노교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수업 통합이라는 굴욕적 요구가 돌아온다.
페미니즘적 시각, 패기, 전문성, 부단한 노력까지 모든 것을 다 한 것 처럼 보이지만
백인 남성에게는 활짝 열린 커리어 패스가 내게만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좁은 문이다.
동양인 학과장 지윤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도 하지만
결국 본인 일처럼 생각해주지는 않는 것같은 불만도 있다.
현실적인 제안이 들어오자 어떤 길로 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결국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는 것은 나뿐이니까.
영문과의 노교수 3인방 중 유일한 여성. 초서에 대한 진실한 애정으로 수업에 임할 뿐 요즘 학생들의 관심사나 그들의 구미에 맞는 수업 스타일은 일절 연구하지 않는다. 학과에서 노교수 3인방을 은퇴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지윤에 대한 공격에 나서는 인물이다.
노교수 3인방 중에서 입김이 센 건 나머지 두 남자 교수지만
이들은 중요한 순간에는 조앤의 뒤로 숨는다.
여성이슈로 여성을 공격하는 게 잘 먹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앤은 학과에서 대대로 받아왔던 젠더 차별 문제를 여성 학과장인 지윤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압박을 넣는다.
노교수 3인방중에서 본인 연구실만 체육관 지하로 옮겨진 데 대해
자기일처럼 싸워주던 지윤이지만
밥그릇 투쟁 앞에서는 다른 여성이고 소수자고 뭐고 물어뜯자는 식이다.
이들의 투쟁은 성공해서 결국 지윤은 학과장 자리에서 쫓겨난다.
조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남자 노교수가 또 숟가락을 얹는다. 자신이 임시 학과장을 맡겠다고.
이때 지윤은 말한다.
“헛소리 마세요. 전 조앤에게 한표요. 사무실 하나만큼은 보장되잖아요”
드라마는 클리셰를 통해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고루한 스테레오타입에 드라이브를 넣지만
주인공들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교수에 도전해볼 생각도 못했다고 고백한 조앤이
이제는 영문과의 학과장이 되는 것으로 시즌 1은 막을 내린다.
이 드라마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성적 대상화되는 전형적인 장면이 한번씩 나온다.
하나는 조앤의 사무실이 체육관으로 옮겨지면서
지윤과 조앤이 체육관으로 들어서서 운동중인 몸짱 청년들을 넋놓고 바라보는 장면이다.
남학생들은 운동복을 입고 엄청난 근육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에 매진중이다.
두 교수는 그저 감탄한다.
흔한 ‘아이캔디’로 젊은 남성의 신체가 소비된다.
반면, 조앤이 대학 측에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 찾아간 사무실에서 젊은 담당 직원은 속옷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핫팬츠 차림으로 사무실을 활보한다.
조앤은 점잖치 못한 옷차림을 지적하며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을 주문한다.
이때 여성의 신체는 아이캔디인 동시에 늙은 여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여성의 입고싶을대로 입을 권리, 이 둘의 충돌을 나타내는 소재로 쓰인다.
이 사무실 직원은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사실은 도움이 되지 않는 멍청한 미녀 캐릭터로 소비되고
이는 학보사 기자역할도 마찬가지다.
재밌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진정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책임지지 않고 일을 키우는 남자 캐릭터는 따로 있는데
이 캐릭터는 악동, 괴짜, 장난꾸러기 정도로 미화되고
민폐 조연 역할은 모두 여성에게 돌아가 있다는 점이다.
여성 직원이 그렇고, 중요한 특종기사를 쓴 학생 기자가 그랬고, 학교의 계략을 발설해버리고 만 야즈라가 그렇고, 눈치없는 학장의 부인이 그렇다.
시즌 1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루한 프레임을 씌우려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며 끝났다.
시즌 2에서는 어떤 캐릭터들이 어떤 역학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