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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Nov 09. 2022

자기 이야기만 70분 동안 하는 학생

feat. 안톤 체호프 - 드라마

학원에서 나를 무시무시하게 괴롭혔던 학생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드라마>를 읽은 사람이라면 바로 납득이 될 텐데, 거기 나오는 숙녀와 똑같은 짓을 하는 학생이었다. 즉 아무도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한 시간 반 동안 해대며 상대방을 못살게 구는 타입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참다못한 주인공이 숙녀의 머리통을 문진으로 후려치는데, 그 소설은 ‘배심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드라마>에서는 웬 처음 보는 숙녀가 주인공의 집에 나타나서 자기가 쓴 글의 낭독을 제발 좀 들어봐 달라고 간청한다. 주인공은 어이가 없지만 예의상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끊고 내 본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이제 수업할까요?’, ‘자,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어요!’) 끊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야기가 자꾸 봇물 터지듯 나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학생이 그토록 들려줘야 했던 이야기란 게 뭐냐, 그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고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자신의 부모님이 언제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는지(전혀 특별할 게 없었다), 자신이 친척들 중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안 친한지, 친한 사람과는 어느 정도 거리에 사는지, 한 달에 몇 번 정도 만나는지, 친척이 무슨 말을 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뭐 이런 이야기였다. 그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없을법한 따분한 얘기. 이런 내용이 50분이고 70분이고 계속되는 것이다.


혹은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애니를 추천하는 일도 많았는데, 장편 애니의 줄거리를 어찌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는지 보통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들어도 들어도 끝나지 않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어떤 날에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40분짜리 설명 영상을 내 코앞에 들이밀며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볼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 애니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고 너무나 지루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동안 내가 왜 참아주고 있었냐고 묻는다면, 일단 거절해봤자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거 안 보고 싶다’,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그 학생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으로, 하던 이야기도 멈춰 주지 않았고 영상도 계속 틀어 두었다. 그렇다고 더 강력하게 거절하거나 화를 내면 상황이 너무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 학생은 내가 아니라 심리 상담사에게 찾아가는 게 맞는 것 같았지만 아시다시피 내 입장에서 그런 조언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학생은 다행히도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 학생이 다시 학원으로 돌아오는 생생한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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