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회사 때려치우고 로스쿨 준비하기
네 번째 회사는 특허명세서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도서관 같고 개인적인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타이핑 소리나 클릭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적막 속에서 모두가 일제히 밑줄을 쳐 가며 명세서를 읽었다. 검수를 하다 보면 내용상 오류나 오역은 많지 않았다. 진짜 업무는 문서의 형식을 맞추고 고객사마다 제각각인 요구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전체 명세서에서 용어는 통일해야 했고, 표현은 ‘명세서스러운’ 것이라야 했다. 단어 앞에 부정관사 ‘a’가 오느냐 정관사 ‘The’가 오느냐로 특허 보호 범위가 달라져 한 글자 한 글자 눈알이 빠지게 확인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고객사마다 선호하는 용어가 있어, 어떤 고객사는 이 단어를 써달라고 하고 어떤 고객사는 저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는 등 제각각이었다.
물론 이런 편집증적인 일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고객사의 장문의 요청 메모를 읽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잦은 실수로 인해 상사에게 혼나곤 했다. 상사는 꼭 하나씩 주의사항을 놓치는 나를 보며 아이큐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막 속에서 내 이름이 갑자기 불리면 나는 심장 부근이 잔뜩 경직되어, 이번엔 또 무슨 잘못을 했나 하고 일어서서 죄인처럼 꾸중을 기다렸다. 매일 혼나면서도 나는 앞으로 실수를 줄여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주의사항을 확인해야 하는 것 치고 기한은 늘 촉박했다. 애초에 신속함과 정확함은 양립 불가능한 요소가 아닌지?
이쯤에서 언급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아버지가 나의 20대 내내 적어도 1년에 네 번 이상 ‘로스쿨’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나는 학부 시절 울면서 법학을 공부하느라 질릴 대로 질려 ‘법’이라면 학을 뗐다. 그러나 눈앞의 고통(회사원으로 살아가기)을 피하는 데 눈이 멀면 올챙이 적 고생이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하는 법이다.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 그때의 고통을 잊어버린 나는 멍청하게도 가족에게 로스쿨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감격해 마지않았다. 변호사 딸을 갖게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벅찬 아버지의 표정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퇴사 후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 준비를 위해 전업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학원 안에서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한 스터디까지 가입해 가며 공부에 전념했다. 매일 오답노트를 만들었고, 시간을 재 가며 문제를 수십 개씩 풀었다.
로스쿨 입학을 왜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나 자신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 늘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남에게 얕보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과 소박하더라도 즐거운 일상을 보내며 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리트 학원을 다닌 것은 물론 전자의 마음이 커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 속 노력이나 변호사가 되어 매일 법정 다툼을 벌이는 일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일 리 만무했다. 변호사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싸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 (물론 실제로 법정에 가지 않는 변호사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란 잘난 체하며 법적 지식으로 남을 이겨먹는 것을 업으로 한다. 그렇지 않고 숭고한 일을 할 경우 돈을 쥐꼬리만큼 벌어 학자금을 못 갚는다) 후자의 삶이란 근근이 끼니를 해결할 정도의 돈을 받더라도 내가 조금은 즐겁다고 여기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살자면 안정적인 결혼 상대자라는 소리를 못 들으며 노후가 불안할 것이고 주변의 은근히 동정 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누구나 이런 선택지 속에서 하나를 골라 묵묵히 살아가는 가운데, 나는 너무나 우유부단한 나머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철회와 중도포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는 로스쿨 준비에 손을 댄 것이었다.
합격 발표날, 나는 분명히 불합격을 원하고 있었다. 입학해서 펼쳐질 나날이 너무 두려웠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하나에 붙었고 그 사실을 섣불리 가족들에게 불어버렸다. 이미 밝혀버린 이상 입학을 피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후회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 그냥 떨어졌다고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다들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하면 받아들여줬을 텐데. 물론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주변의 로스쿨 준비생들은 아무도 나처럼 불분명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이게 맞다는 확신. 변호사가 되는 것이 변호사가 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판검사가 되고, 5대 로펌에 들어갈 수 있는가 등이지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나에게 맞는가, 행복한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은 그들에게 유치하고 미성숙한 감상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