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인정욕구과잉증
사실 나는 로스쿨에 다니는 도중에 한쪽 발을 다른 곳에 살짝 담갔다. 정확한 직군은 언급하지 않겠으나 7급 공무원 채용과정에 지원서를 냈다. 그것은 꽤 오래 걸리는 과정으로, 처음에 자기소개서를 낼 때만 해도 아주 진지한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로스쿨을 떠날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로스쿨을 그만두기 위해 주변을 납득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 그 정도면 로스쿨 그만둘만하네!’ 하는 무언가가. 공무원이 되면 주변의 반응도 내 기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이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던 셈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늘 부모님과 주변(주로 동창들)의 반응이었다.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남들이 나를 높게 평가해 주면 안심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가치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굉장히 차가운 시선으로 보곤 했는데, 지나치게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자신을 관대한 눈으로 봐주었던 것은 미취학 아동일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반 장난 삼아 지원했던 그 채용과정에서 필기시험에 합격해 다음 단계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방학 동안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 체력 검사와 면접을 준비하고 그 시험을 치렀다. 그걸 대체 왜 준비했는지 지금은 나 자신에게 참 미안함을 느낀다. 나는 사회적 지위 따위의 별 것 아닌 것을 이유로 자신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두 번이나 몰아넣은 것이다. 스스로가 버티지 못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더욱이 나는 그곳의 입사 후 교육과정에 대해 무지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인터넷에 잘 나와 있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거기서 일하겠다고 지원하는 마당에 당연히 그 정도는 알았어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확신에 찬 다른 교육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도 내 눈빛에서 그 사실을 알아보았고 대화에 잘 끼워주지 않았다. 내 눈동자에서 깊은 우울을 감지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빛에서 절망을 숨기고 밝은 척할 정도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것은 진짜배기 우울이었다. 로스쿨에서 1차 우울을 겪고 나서, 그것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바로 나는 다음 우울로 점프한 것이다.
도대체 그따위 점프를 왜 했나. 그렇게까지 해서 아버지를 납득시켜야 했던가. 로스쿨 자퇴 후에 동기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그렇게나 중요한가. 인생에서 멍청한 결정을 한 번 한 걸로는 부족했나? 이쯤 되면 진단을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정욕구과잉증. 인생에서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포기해가며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고자 하는 증상.
나는 부끄럽게도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사 의사를 밝히고 교육기관을 나왔다. 새벽에 나오자마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결점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는 단 한 사람. 이 세상 ‘사회적 인정’의 기준과 무관한 사람. 돈이나 학벌 같은 것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 그런 잣대로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의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7급 공무원이 된 지 며칠 안돼 그만둬버렸다는 사실을 말할 때 반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니…”
“ㅇㅇ야, 너 나왔어?? 야 너무 잘했다. 휴! 안 그래도 너 보낸 거 너무 후회되고 너 데리러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언니는 전화를 끊으며 따뜻한 걸 먹고 푹 쉬라고 했다. 아마 내게 그곳이 맞을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받을 나를 상상하며 마음이 돌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의 첫 페이지 첫 문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전자의 경우였다. 일본에서 울며 동고동락하다 보니 우리는 거의 텔레파시가 통하는 수준이 되었다. 언니가 갑자기 ‘그 사람 누구지?’ 하면 나는 바로 ‘제임스 맥어보이?’라고 대답했다(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도). 이런 초능력을 얻게 되기까지 우리는 일본에서 엄청 많이 싸우고, 조금씩 서로의 사고 구조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픈 부분에 연민을 느끼고, 의리를 다지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에 와서 내가 수없이 퇴사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나를 향한 언니의 따뜻한 시선은 조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이런 언니가 있는데 왜 그렇게 심한 사회적인정욕구과잉증을 앓았던 걸까? 언니의 사랑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