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회사 이야기 - 번역회사 -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데이비드 베나타-

by 퀴터

살면서 몇 번인가 강렬하게 죽음에 대한 열망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너무 외롭고 내 앞에 놓인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로스쿨에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며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이대로 그만둘 선택권이 나에게 없다고 느꼈을 때, 그리고 어렵게 들어간 공무원 직장을 그만둘 때, 그만두자마자 쫓기듯이 다른 어딘가에 취업해 일할 때… 그때 나는 솔직히 바로 일할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나는 요양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이 있어야 요양도 하는 법. 나의 안락한 요양을 위해 기꺼이 지원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부모님의 실망과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그분들을 최대한 회피했다. 부모님을 직면하는 것에 대해 너무 공포를 느낀 나머지 퇴사 후에 아예 보러 가지도 않았다. 짧게 전화로 소식만 알렸다. 그리고 나는 지친 심신을 이끌고 밥벌이를 했다. 내가 먹을 음식을 사기 위해, 내 물건을 두고 몸을 누일 방을 보장받기 위해, 샤워할 물을 데울 가스비를 내기 위해, 샴푸와 세면도구를 사기 위해, 생리대와 휴지를 사기 위해.


당시 내가 구한 일은 특허번역 일로, 경력이 있어 쉽게 들어갔지만 알고 보니 전혀 내가 하던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거기서는 모든 검수가 사람 눈이 아닌 예닐곱 가지의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졌고, 사람이 직접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은 최소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외국어 실력보다는 오히려 각종 프로그램을 잘 구사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 아닌 나로서는 무척 고통스러웠다. 명세서의 중복 부분을 엑셀 함수를 이용해 뽑아낸다거나 무슨무슨 사내 프로그램과 매크로를 순서대로 사용한다거나… 너무나 이해하기 어렵고 번잡한 일련의 업무 과정이 그곳에는 있었다. 나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2주 이상 하혈을 했다. 생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이유는, 당시 힘만 주면 피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힘주면 언제든지 나오는 것이 바로 하혈이었다. 껄껄.


나는 그때 내게는 죽을 권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제 쉴 권리가 있다. 더 이상 노동하고 싶지도 않고, 이루고 싶은 꿈도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끊임없이 느껴야만 하는 이 죄책감과 패배감이 너무나 괴롭다.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면 죽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영원히 쉬게 할 권리가 있다. 나는 몇 달간 지속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느꼈다. 내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가족들이 죄책감을 갖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 미리 허락(적어도 양해)을 구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허락해줄 리는 없지만 내가 한참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충분히 징징거리고 나면 어느 정도는 상황을 파악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죽고 싶어 하는지 가족들이 미리 알아주길 바랐다. 그것은 내가 가진 최소한의 따뜻함이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죽을 수는 없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죽음에 대한 나의 진지한 마음을 설명할 의무를 느꼈다.


그건 마치 로스쿨을 다닐 때, 학교를 그만둘 권리가 온전히 나에게 있지 않다고 느낀 것과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내 삶을 그만둘 권리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내가 삶을 그만두면 영구적으로 정서상의 피해를 받을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멋대로 그런 피해를 줄 수가 없었다. 사실 다른 누구보다도 언니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에 멋대로 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서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아도 되니 참 좋겠지만, 나 좋자고 언니의 삶을 산산조각 낼 수는 없었다. 로스쿨은 자퇴해도 되지만 삶을 끝내서는 안 되었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꼭 내가 우울해서 한 생각은 아니다. 나는 그 누구라도 이러한 고통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고, 그러므로 사람은 되도록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강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소리 내어 말하면 사람들이 불편해하므로 나도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내 사상을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혀 일시적인 우울감에 의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리의 도출에 가깝다.


나는 우연히 나와 똑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을 찾아냈는데,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교의 철학 교수 데이비드 베나타다. 베나타 교수는 나같이 막연한 공상에 그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그 명제를 증명해내고 있어 나는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퍽이나 든든함을 느낀다. 나는 열성 팬처럼 베나타 교수에게 메일까지 보내 답신도 받았다. 그의 저서 ‘Better Never to Have Been(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은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태어나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무수한 고통들(인간관계 실패, 노동, 사고, 부상, 주변인의 죽음 등)은 출생 자체를 안 함으로써 사전에 방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임신 및 출생을 축하받아 마땅한 기쁜 일로 여긴다. 태어나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로 인해 위의 보장된 고통들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도 있고 행복도 있는 것보다 고통도 행복도 0인 것, 즉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라는 것이 베나타 교수의 지론이다. 참고로 베나타 교수의 논리에 대해 흔히 들어오는 반론이 ‘그러면 모두가 자살하면 된단 말인가?’라는 것인데, 착각은 금물이다. 베나타 교수는 이미 태어난 생명을 끝내자는 게 아니라 아직 생기지 않은 생명을 굳이 만들어내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습게도 내가 베나타 교수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바로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였다. 리트 기출문제에 베나타 교수의 지문이 나왔고, 나는 평소 내가 하던 생각과 완벽히 일치할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너무나 정돈된 그 지문의 내용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그 지문에 딸린 네 문제를 쉽게 맞혔는데, 이 비범한 지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뭇 학생들에게는 꽤 악명 높은 지문이라고 한다. 당시 스터디 멤버들도 이 지문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한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혔는데.).


하여간 유모차에다 본인 닮은 작은 사람을 태우고 놀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친구들도 다 낳았으니까, 혹은 시부모가 요구했으니까, 노후에 외로울까 봐, 같은 시답잖은 이유로 임신하는 사람들도… 아이를 낳는 행위는 절대로 ‘그 아이’를 위한 것이 될 수 없다. 아직 없는 사람을 어떻게 위한단 말인가. 임신은 짐짓 숭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다. 본인의 자식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서, 자식을 갖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궁금해서, 그 호기심을 해소하려고 하는 행위 아닌가.



이전 07화다섯 번째 회사 이야기 - 공무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