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회사 이야기 - 출판업 -

출판업계에 대한 환상

by 퀴터

자, 법이나 공무원 같은 딱딱한 일은 내 길이 아님이 밝혀졌다. 나도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좀 찾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동안은 내가 사회적인식욕구과잉증을 앓다 보니 아무래도 내 적성보다는 사회적 평가를 우선한 선택을 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실수하지 않겠다. 나는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내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기 시작했다. 이내 눈에 들어온 것은 내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출판 업계였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편집장님이 계신 업계. 그 잡지사는 편집장님 외에도 모든 분들이 다 고결한 인격을 갖추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자연히 출판업계 전체에 대한 환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모두가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 즉 선입견을…


나는 부푼 마음으로 출판 업종의 한 회사에 지원서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읽는 일이고 외국어 능력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직무였다. 사실 20대 중반에도 같은 업종에 한 번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면접 날 들었던 충격적으로 낮은 연봉 때문에 그 뒤로는 업계 자체를 돌아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이곳은 연봉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지원서를 낸 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며칠 후 도착한 면접장.


“……로스쿨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 들어갔던 것인데,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저도 아직 살면서 그렇게 힘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장은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 온정 어린 말에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사장의 커다랗고 따뜻한 눈은 나의 고통을 측은히 여기고 있었다. 내 부모님에게도 아직 받지 못한 따뜻한 위로를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그것도 면접장에서)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면접 전반에서 사장은 나에게 철저히 예의를 지키고 존칭을 사용했다. 일전의 선입견이 발동한 나는 이 회사에 꼭 들어오겠다고 마음먹었고 면접 후 이어진 필기시험에 최선을 다해 응했다. 얼마 후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놀랍게도 그 사람이 열흘 만에 그만두어 내가 입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내가 면접장에서 간과한 것은 나와 직접 일하는 사람이 사장이 아니라 부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면접장에서 나는 사장의 인격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무실 분위기나 부장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업계는 예로부터 엄격한 군대식 문화가 대대로 내려오는 곳으로, 상사들이 부하 직원을 폭언으로 다스리는 것이 당연한 세계였다. 부장은 일을 가르칠 때 쉽게 언성을 높였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첫 주에 업무 방식을 배우다 내가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자, 부장은 ‘이걸 왜 이해를 못 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런 사람을 처음 보았으므로 깜짝 놀라 겁을 잔뜩 집어먹고 서있었다. 그런데 부장은 왜 대답을 않느냐며 한층 더 분노했다. 왜 이해를 못 하느냐는 질문은 대개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질문 아닌가?


부장은 내가 항시 위축돼 있는 것조차 불만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본인 정도면 무서운 것도 아니며, 자신은 옛날에 더 힘들게 일을 배웠다, 상사가 책을 집어던지며 혼내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 말은 나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더 꽉 닫게 할 뿐이었다. 부장은 나를 점점 싫어하게 되었고 ‘저 사람이랑 정말 안 맞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그 말을 나에게 직접 할 때도 있었고 다른 직원에게 할 때도 있었다. 물론 다른 직원에게 내 험담을 할 때도 나는 50cm 거리에 앉아 있었다.


내 눈빛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회사에 가면 50cm 거리에 앉아 있는 부장이 매일 나를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어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뭔가 실수할 때마다 부장은 놓치지 않고 큰소리로 비꼬았다. 나는 수시로 사장실에 불려 가서 부장과의 관계 개선 방안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사장은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부장의 권위의식과 폭언은 그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나는 사장실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 콧물을 쏟아낸 적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일하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에서 운 적은 없었다. 하물며 누가 있는 앞에서 울다니. 그런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울었다. 여러 번 울었다. 내 의지만으로 도무지 눈물이 막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제발 그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제 퇴사를 그만하고 한 곳에 좀 정착하기를 바랐다. 물론 아버지가 바란 것은 전혀 과한 게 아니었고 나 역시 내가 그러기를 더없이 바랐다. 아마 아버지는 살면서 부장 같은 사람을 상사로 만난 적이 없어 이해하지 못한 것일 테다. 아버지 군 시절 선임은 이런 느낌이었을 듯도 한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몽둥이로 맞은 것도 아니니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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