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외치는 "잘했어"라는 그 말이
대선이 코앞이라는데, 정치 기사는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부 발령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참 정치부 기자가 공부하며 쓰는 정치 용어 사전. 아는 만큼 쓸 수 있고, 아는 만큼 보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포스팅.
2월 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법도, 특검법도, 아무것도 통과시키지 못한 또 한 번의 '빈 손 국회'. 3월에도 임시국회를 소집한다는 인공호흡 장치만 겨우 달고 흩어진. 그들에게 표를 던진 이들에게는 늘 그저 그렇게 피곤하고 추웠던 어느 목요일 저녁이었다.
국회는 산적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여념이 없었다. 멍~ 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앉은 이들은 의장의 말에 따라 거수기의 버튼을 누르기 여념 없었다.
어떤 이들은 카카오톡으로 괴로움과 지루함을 호소하다가 그 장면이 언론사 대포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투표 인원의 부족으로, 3개의 법안은 먹다 남긴 송편 조각처럼 다음 국회로 넘어갔다.
오후 7시를 넘긴 시각. 텅 비어버린 본회의장에서 5분 동안의 자유발언을 하러 몇몇 의원들이 자리에 올랐다. 그를 지켜보는 것 역시 몇몇 기자들과, 그리고 저녁 약속이 없는, 혹은 있지만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남았을지 모르는 몇몇 의원들만이 남았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5분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의원들이 외쳤다.
잘했어!
몇 없는 목소리였지만, 음파는 텅 빈 본회의장의 천장을 때리고서야 흩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발언에 칭찬과 격려도 이어졌다.
처음엔 찡했다. 동료애로구나. 텅 빈 회의장에서 텅 빈 의자들을 향해 외치는 자유발언.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는 몇 남지 않은 동료들.
국회를 취재하기 시작하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국회의원이 바쁘다'는 사실. 밤낮 전화를 걸어대는 기자들의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초보 정치부 기자로. 이 사실에 약간 감동받았던 상태라.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 문득 찡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잘했어"는 다른 당 의원들에겐 잘 쓰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수록 잘했다는 목소리가 더 커진다는 사실. 비난이 자극적일수록 "아주 잘했어"라고 칭찬의 수위도 높아진다는 사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잔함과 뿌듯함이 증발했다. 결국 정치는 무대 위의 연극인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나 혼자 속은 기분.
그래도 '진심'으로 금배지(국회의원직을 뜻하는 은어)의 무게를 견디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언젠간 더 나은 법을 만드려 노력한 다른 당의 의원에게도, 진심으로 "잘했어"를 외치는 국회가 언젠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국민들도 "잘했어"를 외치는 날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