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안희정, 2012년의 문재인
대선이 코앞이라는데, 정치 기사는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부 발령 반년이 채 되지 않은 신참 정치부 기자가 공부하며 쓰는 정치 용어 사전. 아는 만큼 쓸 수 있고, 아는 만큼 보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포스팅.
안희정 충남지사가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성남시장을 누르면서 지금 2위로 급부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금 골든크로스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 YTN 리포팅
'골든크로스'(Golden Cross).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사퇴한 이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함께 부쩍 지지율이 상승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지지율을 언급할 때 꼭 따라붙는 단어다.
결국 한 사람의 지지율이 다른 사람을 꺾고 올라서는 '지지율 역전 현상'이다. 풀어쓴다고 해도 얼마 차이 나지도 않아 그냥 '지지율이 역전됐다'라고 표현하면 될 것인데, 왜 굳이 '골든크로스'라고 표현할까. 이 또한 지적 허세인가 싶어 몇몇 기사를 찾아보니 지지율 역전 현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골든크로스'를 쓰지는 않는다.
예컨대, 황 권한대행도 이번 반 전 총장의 사퇴로 이재명 시장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모두 꺾고 올라섰지만 '골든크로스'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용어의 사용이 기자의 개인 취향의 탓은 아니라는 말.
단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힌트가 보인다. 골든크로스는 원래 정치용어가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다.
골든크로스 : 주가나 거래량의 단기 이동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을 아래에서 위로 돌파해 올라가는 현상. 이는 강력한 강세장으로 전환함을 나타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 네이버 주식용어 사전
지지부진했던 주가가 형성했던 중장기 평균선을, 단기적인 주가 상승이 중장기 평균선을 위로 뚫고 올라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증권가에서 1. 지지부진한 주가 2.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상승 3. 이를 기반으로 한 평균선 돌파가 이뤄지는 상황이 바로 골든크로스인 것이다.
즉, 정치권에서 골든크로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1. 두 대상의 지지율이 지지부진 하지만 2. 장기간 동안 역전은 없고 3. 단기간에 급성장하며 상대방을 역전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간 안 지사와 이 시장은 지지율이 지지부진했고, 안 지사는 이 와중에도 이 시장을 역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 반 전 총리의 사퇴와 출마 선언 등을 기회로 삼아 급격하게 성장하며 이 시장의 지지율 선을 뚫고 올라서 '골든크로스'를 완성한 셈.
그런데 골든크로스라는 용어에는 숨겨진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단지 지지부진하던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상대를 역전했다는 것이 방점이 아니다. 바로 용어 다음에 부연되는 해설.
이는 강력한 강세장으로 전환함을 나타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바로 골든크로스의 마력이다. 한 번의 역전이 아니라, 이제 강세장으로 전환했다는 것. 정치인의 용어로는 '돌풍'을 일으킨다는 것. 나아가서는 '대세'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과, 소망이 반영된 단어가 바로 골든크로스이다. 안 지사 캠프는 언젠가 문재인 전 대표와도 '골든크로스'하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골든크로스의 '뽕'에 취했다가 눈물을 흘렸던 장면도 있다.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둔 날 문재인 캠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 밀리던 문 후보가 한 설문조사에서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박 후보를 앞서자 '골든크로스'가 시작됐다며 한껏 들뜬 기분이었다. 한 차례의 역전은 잠정 승리로 포장됐고, 결국 낙관론에 빠진 문 캠프는 막판 스퍼트에서 힘을 빼 패배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인지 아직 2017년의 안 지사에 대해 '골든크로스'라고 확신하는 보도는 적다. 안 시장과 이 시장. 둘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고삐를 늦추는 순간 말에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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