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독한 경비원

영호가 본 두 번째 환상

by 쿼카의 하루

3평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 책상과 의자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벽과 문에는 달력과 각종 메모를 적어 놓은 서류들이 달라붙어 있고, 창문 한 칸은 좁아서 얼굴 하나가 겨우 들어간다. 금광아파트의 경비실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가 외롭게 근무를 서고 있다. 간혹 전화나 입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하는 날이면 영신은 상념에서 겨우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멍한 기분으로 주민들에게 성의를 표시하며 응대를 한다. 반갑게 인사할 기운은 없고, 그저 민원 내용을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기에 급급한 영신이다.


"아들 일은 안됐지만, 너라도 정신을 빨리 차려야지"


영신의 오랜 친구 성창은 최근 영신과의 술자리에서 이야기했다. 영신은 술잔을 기울이며 취기에 고개를 푹 숙인다. 성창이 걱정되는 것은 영신이 또다시 이겨내지 못할 아픔때문에, 영신에게 해로운 것들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성창은 영신에게 울어도 된다고 말했다. 다시 툭 털고 일어나기만 하면, 펑펑 울어도 상관 없다고 이야기하며 영신의 눈을 바라봤다. 영신은 마른 목으로 흐느꼈다.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성창이 하는 말에 귀기울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 더 열심히 받쳐주어야 영호도 그렇고 집사람도 기운 차리지"


성창은 영신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전에 너가 대학때문에 서울 근처로 상경한다고 말을 해서, 그때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었는데"


성창은 말을 멈추고, 힘없는 영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신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더이상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있으니까. 영신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영신은 성창에게 고마운 마음에 말도 잘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친구 좋은 게 뭐겠니. 성창은 사람좋게 웃는다. 영신이 혼자라고 생각하는 시간동안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성창이었다. 고향이었던 전주에서 살고 있던 성창이 영신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영신의 가족을 만나고, 영신과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가졌다. 영신은 친구에게 감사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영신은 경비실에 있으면서 친구 성창에게 카톡을 한다. 친구야, 곧 추석인데 명절 잘 보내라. 영신은 그렇게 성창에게 감사한 마음을 문자에 담아 보내며 경비실에서 홀로 밤을 지새웠다.




영호는 금광아파트 107동 앞에 서 있다. 손에는 풍선을 들고 있고,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조금 나더니 흐릿한 시야 사이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갈색 줄무늬를 가진 날씬한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한발 한발 떼며 천천히 다가온다. 꼬리는 발걸음을 뗄 때마다 살랑거렸다.


여기에 사람이 올 줄은 몰랐군.


영호는 몽롱한 기분임에도 불구하고 깜짝 놀라서 소름이 돋았다. 고양이가 입을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동그란 원 안에 세로로 가느다란 눈동자는 영호를 응시하고 있다.


사실 자네가 어떤 일로 여기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다네. 나는 다만 내가 해야할 일을 하는 거지.


고양이는 꼬리를 규칙적으로 흔들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영호는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던 풍선을 놓쳐버린 영호는 입을 열어 말한다. 너는 누구야?


그건 중요하지 않네.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 발바닥을 천천히 핥으며 이야기한다.


다만 알고 싶다면, 이 세계가 아닌 곳에서 왔다고 말해두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시공간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행성'같은 곳에서 왔다고 하면 알 수도 있을걸세.


영호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영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질문을 생각해냈다. 그럼 대체 여기 왜 온거지?


아까도 말했겠지만, 나는 내가 할 일을 하려고 여기 왔다네. 자네가 할 일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사실 큰 상관은 없어. 놀라도 되고, 발설해도 되고, 은폐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내가 할 일을 막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된다네.


고양이는 하얀색 털이 나있는 목을 조금 떨며 크게 말했다. 영호는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말의 표면적인 의미만을 알아듣고 영문을 모른채 있을 뿐이었다.


그 때, 고양이는 예고도 없이 안개 속으로 달려가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무언가가 불에 타는 소리가 들려 온다. 타다다닥.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파트에서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기운이 점점 영호의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불은 삽시간에 퍼진다. 영호는 그저 107동이 불에 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변은 어두워지고 하늘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뚝뚝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진다.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렸다. 영호는 빗물에 시야가 흐려져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본다. 거센 비는 금광아파트를 휘감던 불을 모두 소멸시켰다. 안개가 걷히고 아파트 곳곳에 불이 붙은 흔적때문에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자욱한 연기가 흐려지자, 폐허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며 선명해진다. 영호는 폐허가 된 쪽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양이가 두발로 서서 난간에 기대어 영호쪽을 보고 있는 것을 영호는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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